가끔은 흐르는 강물이고 싶을 때
가끔은 흐르는 강물이고 싶을 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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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와 그림]나종영

흐르는 강물이고 싶을 때가 있지
가끔은 낮고 그늘 진 곳으로
내려서고 싶을 때가 있을 터이지
가슴 아래께가 서늘해지는 산그늘에 서서
붉어지는 노을을 끝없이 바라보다
그 불꽃 이글거리는 속으로
몸을 던져 버리고 싶을 때도 있을 터이지
한 점 뜬구름과 멀리 지평선이 바라다 보이는
들녘에서 울음 우는 한 마리 풀벌레
시인이라면 그 울음의 이유를 알겠네
가을바람에 쑥부쟁이도 흔들리고 하얀 억새풀도 흔들리고
문득 흐르는 강물의 뒷모습이고 싶을 때가 있을 터이지
그래도 시든 마음 마른 꽃잎이 되지는 말게
아직 우리가 가야할 길이 남아 있으므로
새벽 강가에 서서 별빛을 기다리는 아픈 영혼이 있으므로
물가에 무성히 우거지는 달개비꽃이 되게
봄이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쇠별꽃이 되게
그래 그러게 무명 옷고름처럼 돌아 흐르는 강물에
눈물 한 방울 숨기고 살아온 우리 조선의 어머니
목숨 줄만큼 질긴 강찔레꽃 뿌리가 되게
훠이훠이 면면이 오 천년을 흘러온 강물이 되게
이 땅 이 산하를 뜨겁게 보듬고 흐르는 강물이 되게.

[시작노트]


▲ 한희원 작. 푸른비 내리는 강변.
가끔은 살아가는 동안 그리운 것들이 낯설고 서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저문 강물에 몸을 누이고 어디론가 하염없이 흐르고 싶기도 하다. 존재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명과 불안, 그러나 그 앞에 펼쳐진 일망무제의 붉은 노을과 수 천 년을 면면히 흐르는 강물은 장엄하기만하다.

그 그침 없는 면면함이 이 땅의 눈물이고 곧 역사이다.

시인아, 이 가을 그리움에 묻어오는 쑥부쟁이 꽃향기 한 자락이 우리에겐 생의 별빛 같은 것이기도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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