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벌 언론의 통제
족벌 언론의 통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9.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가밝아오니]박지동 한국언론법학회감사·전 광주대교수
정의로운 사회의 첫 번째 요건은 '언론의 공평한 안배'이며 이것은 공동체 안의 모두가 동등한 인격으로 참여하여 자신들의 필요와 욕구와 희망을 숨김없이 털어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민주적인 대화장치를 마련해놓고 있다는 뜻이 된다. 간단히 말하면 '언론의 자유가 누구에게나 골고루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있어야 인간의 다른 모든 활동을 자유케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언론 전통은 어떠한가.

대중매체인 일간신문의 등장은 일본제국의 식민지 폭력통치하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총칼을 잡고 있는 주인과 굴종 순종만 해야 하는 머슴' 사이의 언론이었다. 지배자 일방의 지시 명령 응징 공포 고문 학살로 이어지는 말이 필요 없는 침묵의 언론이었다.

이와 같은 주인과 머슴간의 언론상황은 8·15 이후 미 점령군의 절대 군정 하에서도 계속되었으니, 친일파(일제 경찰과 매국 배족 언론인·교육자·종교인들)가 주도하는 '언론의 지배-피지배 관계'는 일제 때와 유사한 형태로 현재까지 60여년 동안(조선·동아 출생 87년이 되도록) 이어져 왔다.

지배언론 세력은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 '자유 시장원리'를 읊어 대면서 친외세·반민주언론 자세를 견지하여 왔다. '자유민주주의' 구호는 서민대중의 '불평등' 호소에 대한 입막음 방패이며 망치였다.

자유경쟁 시장 논리도 재벌로부터 하층 근로 대중에 이르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산-공급-소비 과정은, 불로소득의 수탈계층으로부터 노동고통에 비해 소득이 형편없거나 실업자의 신세에 이르기까지 온갖 형태의 불평등·불공정·착취의 사슬로 얽혀 있다.

이 착취사슬의 마디마디에 언론이 존재하는데 수탈자들의 언론과 피수탈자 측의 언론(하소연과 아우성)이 공정하게 안배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은 지배언론의 신문지면에 그대로 인쇄되어 실증해 주고 있다.

이들은 허구의 민주주의나 자유시장, 평등을 가정하면서 생존·생활의 현장에서 주장을 펴지 못하고 고초를 겪고 있는 피수탈 계층이나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고 민주적인 상태에 있는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불로소득하는 도둑들과 생산노동하는 일꾼들'을 '자유시장'의 동등한 주체로 착각하고 언필칭 '경제와 언론의 자유시장 논리'를 주창해 온 것이다.

일상적인 상품은 품질의 우열에 따라 호불호 선택이 다양하게 이뤄지며 단순한 개인 효과에 그친다. 반면 언론 상품(사실기사+논설)은 독자·시청자들의 인격 전체를 자극, 사회 전체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교육·세뇌·공포·불안의 효과를 일으키는 마술적 특수상품이다.

그래서 친일파 역적들이 만들어낸 신문들은 87년 동안이나 한결같이 생산 고통에 시달려온 근로민중을 업신여겨왔고 서민계층을 옹호하는 지식인들을 '빨갱이'로 적대시하면서 침략외세와 권력자들에겐 아첨하고 찬양하여 권세와 재산의 특혜를 독점하여왔다. 알고 보면 사실상 공동체 서민대중의 공동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불공정 언론의 악영향을 하루라도 빨리 줄이는 방법은, 경품 등 부정한 방법으로 구독을 확장하고 무한량의 광고료 수입(매일 10억원 안팎)으로 축재하며 약육강식의 왜곡된 기사를 쓰는 비민주언론사들의 신문부수를 일정 한도로 줄이는 것만이 현재로서는 최소한의 언론민주화 방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박지동 한국언론법학회감사·전 광주대교수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