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섬진강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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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시와그림] - 임동확
섬진강

저처럼 밤낮으로 흐르는 모든 것들은
날아가는 화살촉 같은 시간의 가장자리와
마구 뒤섞이며 힘센 고요의 강줄기를 여나니
가장 두렵기에 무방비로 웃자란 그리움이여
아무런 대책 없이 지금 강물 속을 떠가는 흰 구름과
그 속에 발 담근 채 서성이는 마른 갈대숲을 보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저 잔잔하고 짙푸른
흰 물결 속에도 제 가슴을 찢어발기는
검은 바닥의 깊이와 그 어디에도 안주 못하는
부랑의 부산한 발걸음이 소용돌이치고 있나니
추억은 한낱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뛰어 넘을 수 없는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한 영원을 마주치게 하는 생의 활력인 것을
섬진강이여, 매 순간 마중하고 작별하길 반복하는
징검다리 건너, 나룻배 줄을 잡고서라도
가난한 불빛 깜박이는 마을길로 들어서라
그저 쫓기고 뒤돌아보며 하류로 밀려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무수한 변신과 혁신을 거듭하면서
결국 더 크고 넓은 바다로 역행해가는 것이리니
불현듯 제 운명의 숨통을 조르는 얼음짱 속에서도
섬진강이여, 측정 불가능한 한 세계를 보여주며
이미 낡아빠진 감상과 위로의 척도를 뛰어 넘으라
오로지 순종적이거나 강제적이 아닌 자유와
선택 속에서 그 어떤 종합으로도 가두지 못할
저항의 힘으로 단숨에 새처럼 비상하고 도약하며
오직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당당한 위대함을 갱신하라

▲ 김효삼作 섬진강마을
[시작노트]

얼마 전에 섬진강을 지나치면서 섬진강이 인간의 관점에서 지나치게 신비화되거나 상품화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한 바 있다. 특히 그것이 값싼 감상이나 위로의 대상으로 환원되면서 그 속에 소용돌이치고 있을 저항과 혁신의 소용돌이를 못 보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풍경은 단지 하나의 대상에 그치지 않는, 주체와 상호작용 속에서 측정 불가능한 세계와 마주서게 하는 그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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