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의 지역감정과 국가폭력
거창의 지역감정과 국가폭력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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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밝아오니]김승환 충북대 교수
'시체더미에 다가갔더니 까마귀가 펄럭이듯 날아올랐어요'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어서 까마귀들이 눈을 파먹고 있었다고 술회하는 그는 거창 양민학살 사건 유족회의 전임 회장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까마귀가 인간의 눈을 파먹는 광경이 눈에 선해서 사백여 명 작가들은 아연히 먼 산을 바라보면서 통한의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 마을이 몽땅 학살되었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소설감이었다.

이것은 지난 8월 20일(일) '2006년 민족문학작가대회'를 마치고 거창 신원리의 양민학살 현장에서 벌어진 광경이다. 마침 작가들이 남녀로 합사한 두 개의 봉분 앞에 도착했을 때 유족회의 여러분들이 모여서 추모하는 예를 지내고 난 직후여서 그 생생한 당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대회의 시초는 영호남문인대회였다. 1992년 영남과 호남의 작가들이 망국적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문학활동을 증진하고자 모였는데 이제는 전국의 작가들이 모이는 큰 대회로 성장했다. 인권과 평화를 주제로 한 이 대회는 장소가 경남 거창이라는 공간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오인태 시인 등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야말로 거창에서 거창하게 열린 이번 대회에는 전국에서 오백여 명의 작가와 팔레스타인과 인도네시아에서 온 작가도 함께하여 열기가 높았다.

그런데 그 높던 열기는 일순간 변했다. 거창 양민학살의 현장을 작가의 눈으로 확인하면서부터였다. 거창 양민학살사건이란 1951년 1월,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벌어진 군인들에 의한 양민학살 사건이다. 이미 김원일의 [겨울골짜기]나 여러 작품들이 거창 양민학살을 다룬바 있지만 모든 작가는 민족사의 아픔을 작품으로 담아내야 하는 의무가 있기에 현장에서의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국가가 자기 국민을 상대로 집단폭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반인륜적인 제노사이드였다. 제노사이드(genocide)가 전쟁범죄와 다른 것은 집단이 집단에게 가하는 기획된 야만적 폭력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일제식민지 시대에 한글 말살 정책도 제노사이드고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도 제노사이드다. 문제는 특별한 광기가 발동하여 학살(虐殺)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 국민의 군대가 자기 국민을 무고하게 학살했다는 점에 있다. 그러고서도 그것을 은폐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 무고한 양민학살 사건을 두고 한 방송사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그 조그만 면에서도 지역감정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절박한 상황에 놓인 가난한 윗동네 사람들은 면장이 자신들을 위해서 애써 줄 것으로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고 윗동네 사람들은 모두 학살당하는 결과가 되었다. 10년이 지난 훗날 4/19혁명 때 윗동네 청년들은 아랫동네의 당시 박영보 면장을 때려서 죽이는 일을 벌였다. 당연히 5/16쿠테타 때 살인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렇게 하여 거창 양민학살이라는 그 참혹한 사건은 윗동네와 아랫동네가 원수가 되는 일로 마감되었다.

지역감정의 출발은 자기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익과 관계가 겹치면서 적대적이 되고 싸우기까지 한다. 지역감정의 해소를 위해서는 상대인 타자(other)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원한을 풀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영남의 거창에서 일어난 거창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서 호남 사람들이 먼저 이해하고 노력하는 자세야말로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광주민중항쟁 당시, 수많은 영남 사람들이 진심으로 호남을 염려하고 또 지지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망국적인 지역감정은 나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고귀한 교훈을 새겨 보자.

/김승환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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