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산층인가?
우리는 중산층인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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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밝아오니]정지창 영남대 독문과 교수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6, 70년대만 해도 학생들은 생활환경조사서라는 것을 일률적으로 써내야 했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직업을 비롯한 여러 문항들이 있었는데 생활 형편은 '중'이라고 써내는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이때의 '중'이란 소득 얼마부터 얼마까지라는 엄밀한 경제적 계층분류법에 따른 중산층을 뜻한다기보다는 다분히 주관적 판단에 따른 막연한 중간 계층이라는 의미가 강했던 것 같다. 월셋집이나 전셋집에 살아도 생활정도가 '하'라고 자인하는 사람은 드물었고 잘 사는 동네 부자도 굳이 '상'이라고 으쓱대지 않았다. 적어도 심정적으로는 국민의 대부분이 중산층이었던 셈이다.

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른바 서민층 아파트와 중산층 아파트, 고급 아파트라는 기준이 계층을 나누는 유력한 잣대로 등장했다. 시민아파트나 20평 이하의 이른바 서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히 서민층으로 분류되었고 25평 이상의 이른바 맨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중산층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60평 이상의 넓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자칭, 타칭 상류층으로 행세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90년대말 이른바 아이엠에프(IMF) 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양극화가 심화되어 종전의 서민층과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몰락하고 일부 중산층이 상류층에 합류함으로써 계층간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게 되었다. 대망의 새천년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날품팔이, 노점상 등 전통적인 도시빈민 외에도 농어민과 비정규직이 새로운 빈곤층으로 등장했고, 이제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가장 첨예한 현안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문제는 도무지 가난을 탈출할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빈곤층의 박탈감과, 부동산 재테크로 불리는 아파트 투기와 자녀의 조기유학 등을 통해 기득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는 중상류층의 이기적 욕망이, 도저히 화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양극화의 길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계층의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의식의 양극화를 낳게 마련이다.

그러니 정부에서 아무리 양극화 해소를 부르짖고 최우선적인 정책으로 추진하려고 해도 이미 양극화된 국민의 의식은 이를 수용하고 따르려 하지 않는다. 세금정책으로 부동산 거품을 진정시키려 해도 대부분의 국민이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는 마당에 실효를 거두기는 힘들다. 수도권은 지방을 '시골'이라 무시하고, 기업인은 농업을 경쟁력 없는 사양산업이라고 냉대한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중산층 아파트 주민들은 자기 동네에 서민용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결사반대한다.

대부분의 국민이 스스로의 생활 형편을 '중'이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이 못 살고 못 먹었던 시절에 비해 소득은 높아지고 비만인구는 늘었지만 우리의 심성은 점점 더 각박하게 메말라온 셈이다. 경제적으로는 부자가 되었지만 마음은 훨씬 더 가난해진 것이다.

몇 평의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몇 푼의 아파트 값을 더 받기 위해 소중한 우리의 이웃을 외면하고 짓밟는 우리는 얼마나 알량한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것인가.

/정지창 영남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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