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聖火의 길
초록 聖火의 길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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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시와 그림] - 고재종
하늘에 닿을 듯 수려 찬란한 메타세콰이아. 저 나무를 커다란 초록 성화라 해도 괜찮겠다. 담양에서 순창까지의 시오릿길에 도열한, 저 초록 성화 천여 자루. 내가 너희로 인해 세상을 수긍할 때 나는 무엇을 본 셈일까. 초록 성화의 길 저곳으로, 싱싱 씽씽 은륜을 밟는 아이들의 꿈, 스치는 이팝꽃 향기. 아득했다 하자. 초록 성화의 길 저곳으로, 뒤뚱거리는 한 노부부의 어두운 귀, 저미는 까치집의 까치소리. 따뜻했다 하자. 나는 한숨과 탄식의 길을 걸어왔다. 초록 성화의 저 길로 어느 비바람 치는 날 非非非 잎새 날릴 때, 터덜거리는 시골버스는 나보다 더 터덜거렸다. 터덜거리는 뒤끝이 별들의 푸른 밀어 쪽이라면, 그 푸른 전설들이 가지 끝마다 주저리주저리 열린다면, 저 나무가 한겨울 큰눈 뒤집어쓴들, 어느 나그네의 詩琴이 울려나지 않을 리 없겠지. 나는 때로 슬픈 것을 좋아한다. 저 나무에 걸리던 동박새와 소쩍새의 울음을 추억한다. 나는 또한 생생한 것을 좋아한다. 저 나무를 흔들던 쓰르라미와 씨르래기의 노래를 기억한다. 초록성화의 길, 저 길이 급기야 불끈! 청청! 하느님에게까지 닿는 길이거늘 나는 이제 고요하여도 되는가. 하면 저 길이 길이거늘 저 길을 잘라내고 웬 길을 내려는가. 마을에선 왜 弔鐘을 울려대지 않는가. 너와 나는 뜨거운 팔짱 끼고, 저 초록 성화의 길 아득한 소실점 속으로, 어떤 씩씩한 사랑으로 차마 사라지는가. 오늘은 염천, 저 초록 성화는 저희들끼리 분기탱천, 더욱 타오른다면, 나는 또 세상에 대하여 무엇을 소리칠까

▲ 박구환 作 [풍경] (목판화)
[시작노트]
헨리 데이빗 소로우 (1817-1862)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도 측량일이나 목수일 등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글을 썼다. 그는 1845년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면서 소박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2년간 실험했다. 그때의 생활의 기록인『월든』이라는 책은 21세기 생태교과서의 고전이 되었다. 그가 숲 속에 살 때 개발업자들이 전기톱으로 마을 뒷산 어귀의 크나큰 느티나무를 벨 때 그는 외쳤다. "마을 사람들은 왜 弔鐘을 울려대지 않는가!"라고. 이유는 위의 나의 졸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고재종 (高 在 鍾)

1957년 전남 담양 출생.
1984년 [실천문학]옇동구밖집 열두 식구」등을 발표하며 등단. 
신동엽 창작기금,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계간 [문학들] 주간.
시집으로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쪽빛 문장] 등과
산문집으로 [쌀밥의 힘] [사람의 길은 하늘에 닿는다] 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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