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제국, 만만한 한국
오만한 제국, 만만한 한국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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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평]홍광석 화순고등학교교사, 소설가
외교관은 허가받은 간첩이라는 말도 있으니 세계 각국에 외교관을 보내는 마당에 한국에 상주하는 외교관이 치외법권을 누리는 사실은 호혜평등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제약업계의 의견 수렴을 위해 운영해온 [의약품 워킹그룹]에 미국 대사관이 관리를 파견하여 약값 정책에 영향을 끼쳤다는 보도(한겨레신문2006.3.10)를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한국이 미국에게는 참으로 만만한 존재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북핵문제로 6자회담의 발목을 잡더니, 달러 위조 문제를 들어 북한을 압박하고, 한국에게는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돈을 주는 것 아니냐며 발목 잡기를 시도하는 미국의 태도를 보며 앞으로 한국의 처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 보이는 것만 같다.

2005년도 무역적자 약 8,050억달러(약800조원), 매일 20억 달러의 국채를 발행하여 재정적자를 메우고 있는 나라, 이렇듯 쌍둥이 적자로 인해 대외부채만 8조1천800억 달러를 안고 있는 나라, 그 나라가 자유무역협정(FTA)를 앞세워 한국 시장을 아예 송두리째 장악하려 한다.

미국은 한국 시장을 개방하라고 한다. 농업 시장은 물론 영화도 개방하고 금융, 의료 등 서비스 분야는 말할 것 없고 전력, 철도, 통신 등의 국가 기간산업도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교육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2003년 WTO 양허안에서는 초 중등 교육 분야는 개방하지 않겠다고 했건만 결국 정부의 의지도 빛바랜 공약이 되고 말 것 같다.
경제 자유 구역과 제주 국제자유도시의 외국인 학교 설립 규제를 완화할 작정이고 나아가 외국인학교의 초기 설립 투자비용을 줄여주기 위해 학교부지와 건물 등의 임차 조건을 완화할 작정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는 몇 년 후 한국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국의 소수 학생만이 외국인 학교에 다닐 것이다. 그 한국의 아이들은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을 테고, 교육열에서는 가히 세계적이라는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기를 희생해가며 자식들을 외국인 학교에 보내려 할 것이다. 아마 그때쯤은 아무리 한국인들의 애국심에 호소한들 무망한 노릇이 되고 말 것이다.

가난한 부모들은 자식들의 원망의 대상일 뿐, 우리 민족은 교육의 양극화를 넘어 어쩌면 인종적으로도 나뉘게 될지 모른다. 다시는 거리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광경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좀 더 끔찍한 가정이지만 21세기가 가기 전에 우리 민족은 형체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가져가겠다는 오만한 미국. 많은 학자들이 한미간의 FTA에 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건만 별다른 고민 없이 끌려가는 한국. 씁쓸한 미래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기에 마음은 너무 절박하다.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내는 나라, 그러면서도 막대한 전비를 들여 다른 나라를 짓밟는 나라, 만만한 나라에게 시장 개방의 압력을 가하는 나라, 도대체 그 오만한 불량 제국으로부터 언제쯤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과연 당당하게 한국의 자존심을 세울 날은 있을 것인가? 뜻이 있는 사람들은 힘이 없고 그나마 분산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도 답답하기만 하다.

/홍광석 화순고등학교교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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