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부해야 돼요?
왜 공부해야 돼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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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허연 가정의학과 의사
아이: "왜 공부해야되요? 왜 공부해야 하냐구요?"
부모: "다 너를 위한거야!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를 강조한 라디오 광고의 도입부다. 출퇴근길에 여러 번 반복적으로 들어서 그 내용을 다 외울 지경이다. 마무리는 "대화합시다"라는 나레이터의 말로 끝난다.

얼핏 좋은 광고인 것처럼 생각된다. 대화를 하자는 권유가 나쁠 까닭이 없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허망하다. '대화하자'고 권유하는 것만으로 대화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건강하게 살자'는 말 한마디로 병균이 우리 몸에 침투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만큼이나 실효성이 없다.

대화 권유하기 전에 필요가 먼저

누군가가 어떤 기능을 습득하는 데 가장 훌륭한 자극은 그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외국으로 유학나간 아들과 마음껏 대화하고 싶어서 인터넷 메신저를 공부한 이웃 아주머니를 잘 알고 있다. 아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지 않았고, 따라서 굳이 메신지를 쓸 필요가 없었더라면 그 아주머니는 여태껏 메신저의 'ㅁ'도 몰랐을 것이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대화할 필요를 느껴야 대화를 하든지 말든지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대학 진학을 위한 학교공부가 전부인 아이들에게 "엄마,아빠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한들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공부가 아닌 다른 무엇이 삶 속에 있어야 그것을 소재 삼아 대화도 가능한 법이다. 말하자면 대화를 하자고 강조하기 전에 대화의 '조건' 혹은 '필요'를 먼저 만들거나 강조하는 것이 대화에 이르는 옳은 길이라는 주장이다.

얼마 전 중학교 다니는 아들의 설문지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공부해야 할 이유에 대해 아들 녀석은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라고 설문지에 써 놓았던 것이다. 녀석과 대화가 부족했구나 반성하던 차에 어린 시절 추억 한 자락이 떠올랐다.

'내 안의 이유' 찾을 때 의미 생겨

초등학교 때 한 선생님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를 '뱀의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공부하지 않는 남녀는 아는 것이 부족하므로 한 시간 동안 뱀이야기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남(아는 것이 없어서) : 저기요. 큰 뱀 본 적 있어요?
여(역시 하는 것이 없어서) : 얼마나 큰 뱀이요?

선생님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만약 이 두 남녀가 시와 음악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면 대화가 얼마나 멋졌겠니? 멋진 대화, 아름다운 연애를 하기 위해서도 공부는 중요하단다." 공부를 해야 할 이유를 대학이 아닌 연애에서 찾아주다니, 이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인가. 이후로 정말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대학보다는 연애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무언가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그 필요를 먼저 찾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를 강조하려면 대화가 왜 중요한지, 삶에서 어떤 도움이 되는지 그 '필요'를 세련되게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신영복 선생은 자유를 '내 안의 이유를 찾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공부든 대화든 '내 안의 이유'가 있어야 제대로 될 터이고, 그 때서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즐거운 공부, 신나는 대화가 이뤄지려면 내 스스로 그 필요와 이유를 지녀야 한다.

대화 이전에, 공부보다 먼저, 그것이 필요한 이유를 찾아 깨닫는 지혜가 필요할 터이다. 아들과 함께 그것을 찾기 위해 오늘 저녁에는 '대화'를 해야 겠다.

/허연 가정의학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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