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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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김경주 경담문화재보존연구소 이사
봄이 완연하다. 새들이 돌아오고 달래 냉이 씀바귀 여러 나물들이 싹틔우고 먼 산에는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를 것이다. 그 추웠던 겨울의 기억은 저 멀리 물러나고 산봉우리에는 짓무른 딱지 같은 눈 조각 얼음 조각이 떨어지면 바위손도 이끼도 푸릇해 질 것이다.

필자의 선친은 뭘 하고 세상을 사셨는지 말하기 어렵게 이런 일 저런 일을 하시다 돌아 가셨다. 글 쓰는 일, 연극, 영화, 판소리, 정치, 언론관계일 등 얼핏 보면 무모할 정도로 잡다한 관심과 조예를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가끔 연초 휘호라도 한번 쓸 기회가 생기면 자주 쓰셨던 글귀가 생각난다. 이름 하여 異苔同岑이라는 글이었다.

이태동잠, 어울림의 미학

원래는 권상로라는 한학자가 썼던 말인데, 직역을 하자면 서로 다른 이끼가 한 봉우리에 있다는 뜻이다. 선친께서는 교육학을 전공하여 한 때는 교직생활을 하기도 했고, 현실에 관심을 가져 정치에도 뜻을 두었다. 한 우물을 판다는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형국이었다. 결국은 늘 곁에 두고 즐겨 마시던 茶를 사랑한 나머지 차의 보급과 차 문화의 중흥에 평생 매진하였다. 결국 하나도 제대로 이룬 것이 하나도 없는데, 달리 보면 두루 두루 매사에 관심을 갖고 세상사 많은 것들과 어울리며 사셨던 것 같다.

봄이 되면 바쁘다. 자연은 겨울을 걷어내느라 바쁘고 사람은 제 뜻을 펼치느라 바쁘다. 봄이 되면 시끄럽다. 자신의 굴레를 벗겨내려 애를 쓰고 자신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겨우내 공방을 벌였던 황우석 교수의 진실, 에프티에이 협상 문제, 야구, 축구 등 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지나간다. 으레 술 한 잔을 마시면 망측스레 돋아나는 수컷들의 호기로움도 아닐 것인데 어느 選良은 법으로 따지겠단다. 허구를 팔아 돈벌이 하는 예술가나, 몸뚱이 팔아 살아가는 창녀나 사는 것은 똑 같을까? 아닌가 보다. 골프가 더 재미있는지 테니스가 더 신나는지는 몰라도 비록 자신들의 더 나은 처지를 위해 파업을 벌인 철도노조의 파업이 아니더라도, 고귀한 순국선열들의 높은 뜻을 기리는 그런 자리가 아니더라도, 장마에 물난리에 이른바 저지대 주민들 막 떠내려가는데 기왕 하실 거면 날 좋을 때 골프를 치실 걸 그랬나 모르겠다.

시끄러운 봄 차분히 맞자

어쨌든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게 내 돈 주고 술 마시고 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야구는 세계 4강이 되어서 국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이상한 나라가 주창하고 그 이상한 나라가 설계하고 대진표를 짜더니 결국에는 또 다른 이상한 나라와 한 대회에서 세 번 씩이나 경기하게 하는 이상한 대회였다. 그랬거나 말거나 우리 선수들은 원 없이 싸웠고 우리 동네 출신 선수들이 톡톡히 제몫을 다 하였다.

올 가을엔 광주 비엔날레가 열린다. 이미 국내 행사를 넘어서 널리 세계에 알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큰 행사가 문화수도로 가는 길목에서 열리는 게 기쁘다. 문화란 스스로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여러 가지 문화적 소양도 쌓고 격조 있는 생활도 즐길 수 있다. 요란하게 떠드는 세상사에서 한 걸음 비껴 앉아 차분하게 그들을 바라 볼 수 있게 한다. 황우석, 스크린 쿼터, 성희롱, 삼일절 골프, 황제 테니스, 야구, 축구 등 시끄럽고, 번잡스럽고, 가슴 벅차게 지나갔던 기타 등등의 일들이 세월 속에서는 한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 다 같이 이해하고 어울리며 차 한 잔 나눠야 한다. 이태동잠을 얘기 하셨던 아버님이 그립다.

/김경주 경담문화재보존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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