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지방선거 단상
5.31지방선거 단상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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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 눈]이정우 편집장
삶을 규정하는 풍속이 강력했던 시대에는,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편했다. 풍속에 따라 목표가 정해져 있으니 고민이 필요 없었다. 그저 '돌격 앞으로' 하면 그만이었다. 고민이 있었다면, 돌격의 방법과 시기 정도였다.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노동자 편을 들면 틀리지 않았다. 제도정치권의 여-야가 대치하면 야당 편을 들면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되듯이, 정신이 고프면 공안 당국이 '불법' 딱지를 붙인 책을 읽으면 어느 정도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풍속이 없다. 아니 있다. 마땅히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풍속이 지나치게 많아 무엇을 좇아야 할지 판단의 공황상태에 빠지기 마련이니 없는 것과 한 가지다.

노동자 파업은, 예컨대 대기업 정규직노조, 공무원노조, 비정규직 노조로 다원화 돼 '무조건' 노조 편을 들다가는 '무식하다'는 소리 듣기 딱 좋다. 제도정치권의 여-야는 사안에 따라 합종연횡하고 있어 그 모든 사안을 면밀히 검토해야 입장이 정리될까 말까 한다. 정신은 더 이상 고플 틈이 없다. 정보, 지식, 담론의 과잉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소화불량에 걸릴 지경이다.

정치 판단의 공황상태

이러다 보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좌파의 오래된 고뇌가 새삼 떠오를 수밖에 없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의 반민주, 불합리, 민중 억압의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데 왜 할 일이 왜 없겠느냐, 고. 옳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다. 이번 5.31지방선거에서 우리들의 투표행위는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당은 우리당대로, 민노당은 민노당대로,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마땅히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겠지만 판단은 쉽지 않다.(누군가는 투표행위의 고민 변수로서 민주당을 열거하는 이유를 따져 물을지도 모르겠다. 이유를 대자면, 우리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점이 우선이고, 보다 확실하게는 광주전남에서만큼은 민주당의 지지도가 제일 높다는 사실 때문이다.)

막대기만 꽂아도 'DJ당'이 당선될 때에는 그 막대기에 찬성표를 던지던가, 반대로 낙선운동을 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민노당이라고 해서 플러스의 가중치를 매길 수도 없고, 민주당이라고 해서 마이너스의 불이익을 줄 수도 없다. 이 또한 변형된 '막대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인물'일까. 인물의 판단 기준은 또 무엇일까. 세속적인 '경력'이 인물을 가늠하는 잣대라면 우리 사회의 일보전진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책과 공약을 면밀히 검토하자는 메니페스토 운동이 이 즈음해서 등장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고, 기대도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서류작성 능력이 좋은 선거캠프에게만 유리할 수 있다. 그 실현가능성까지를 고려한 주도면밀한 정책공약을 마련하는 데는, 당연히 사람과 돈이 필요할 것 아니겠는가.

절망이라도 덜했으면

법과 제도가 어떤 식으로 정비되든 간에 그것을 무화(無化)시켜 버리는 반대급부의 노력이 어느 분야보다 심한 곳이 '선거판'이다 보니 이래저래 절망적인 상상만 하게 됐다. 물론 억지로라도 찾아보면 희망이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양당구도'로 선거가 치러진다는 점은 동안의 호남정치 이력에 비추어 커다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적어도 공천장 하나 믿고 '막대기'가 의기양양하는 꼴은 덜 보게 될 것 같은 것이다.

대략 석달에 일주일이 부족하게 '그날'이 남았다. 희망을 걸기보다는 절망이라도 덜 했으면 하는 결과를 기대해본다. 풍속이 실종된 때에는 돌격을 유보한 채 더 많이 주판알을 튀겨 보는 것도 나쁜 처신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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