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아시아문화전당 당선작이 선정되면서
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이 본 궤도에 올랐다. 이에 따라 다소 추상적인 수준에서 논의됐던 이전의 분위기와 달리,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은, 입장과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 다양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에 [시민의 소리]는 특정 입장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지 않으면서도 독립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는 네 명의 ‘현장통’들에게 ‘쟁점과 과제’를 들어봤다.(사회:이정우 기자, 김경수:김, 방극만:방, 나의승:나, 박성배:박)
편집자 주
"중요한 건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다양한 곳에 문화살롱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점"
김
: 광주, 문화, 중심도시를 서로 떼놓고 뭘 의미하는지 얘기해 보죠. 일단 먼저 광주라는 도시에 대한 특수한 인식은 경상도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와도 90% 이상 지지를 해준 세계적 유례가 없는 도시입니다. 노 대통령이 이에 감동해 문화수도를 국가적 재원을 통해 투자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광주가 계획적으로 육성되는 문화도시라는 것도 세계 유례없는 일인 듯싶습니다. 두 번째로 문화라는 것도 한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서민들의 '풍속'이 곧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렵게 생각하면 어려워 보이지만 이 지역만 봐도 광주댐 주변의 가사문화권이나 임곡의 기대승 성리학, 나경적과 하백원의 물염정이며 대촌의 동암 이발, 필문 이선제, 담양의 유희춘 등 수많은 살롱 문화가 꽃피웠던 곳입니다. 세 번째로 중심도시 이야기인데요. 독재정권 때 메트로폴리스로 형성된 광주는 이제 행정구역 상 뿐 아니라 광주전남의 거점도시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아시아문화전당과 같은 건물이 아니라 이 땅의 사람들이 문화로 살아갈 일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뭐 좀 잘한다 싶으면 서울로, 외국으로 빠져나가서는 문화도시 요원합니다. 광주시뿐 아니라 교육계, 재계 등 모든 역량이 동원돼 인재를 양성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사회
: 네 모두들 말씀해주신 것처럼 문화도시를 만들어 가는 데 광주는 많은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문화도시 추진이 경제개발계획처럼 진행된다는 아쉬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광주역량의 한계고,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도 있습니다. 말씀들 간에 약간의 견해차도 엿보이는데, 이야기를 계속해보죠.
나
: 지중해의 '칸느' 같은 도시도 인위적으로 개발된 곳입니다. 다른 예로 [시네마 천국]의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고향인 이태리 남부의 소읍에서는 매년 토르나토레 영화제가 열립니다. 아주 작고 소박한 축제인데도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이를 찾아 문전성시를 이루죠. 그것처럼 광주 역시 '칸느'와 같은 훌륭한 문화도시가 되지 말라는 법 없고, 토르나토레의 고향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자부심부터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회 : 이왕 인재 양성이나 사람이 곧 문화라는 말씀들이 나왔으니 시민참여에 대해 말씀을 더 나눠보죠.
"문화전당… 시민들의 쉼터 기능 중요, 녹색밸런스 깨진 시청 앞 분수광장 사람 안가"
박
: 문화는 쉽게 말해 '사는 것'입니다. 시민참여보다 궁극적인 것은 문화생산자, 창작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입니다. 우스개 소리로 문화전당 지을 비용으로 시내의 큰 빌딩을 사서 창작자들에게 작업공간으로 제공한다면 광주뿐 아니라 전국 아니 아시아 각지에서 모든 작가들이 광주로 몰려올 것입니다. 그 창작자들이 프로그램을 열고 시민들이 호응을 해 준다면 자연히 아시아 문화중심도시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사람에 대한 고민이 되고 나서 활동을 위한 공간을 생각해야지 기획추진단 혼자 끙끙댄다고 되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김
: 관광식당을 정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입니다. 시에서 너 관광식당 해라해서 그게 되나요? 주인의 필사적인 노력과 음식맛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 관청에서 자연스럽게 지정하는 것 아니겠어요? 건물도 좋고 다 좋지만 시민들이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이쪽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것 같아요 그걸 발견해서 자신감을 가지도록 해주고 지원도 해주고 폭발적으로 응원해주면 광주는 더 빨리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약간의 환경만 조성한다면, 광주시민들은 알아서들 잘 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나
: 맞아요. 모든 것이 단박에 이뤄지지 않듯 너무 성급하게 나가기보다 찬찬히 관찰하면서 열린마음으로 다가설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추진하는 분들이 얼마나 열정어린 리더쉽을 가지고 추진하는지가 중요하겠지요.
방
: 영남과 호남을 비교해 볼 때 호남은 모든 면에서 편파적인 대접을 받고 산업화의 진전을 이루지 못한 반면 생태적인 보존이 잘 돼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문화라는 게 의식주를 포함해 모든 것이 다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생태적인 환경도 잘 이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 부분이에요. 예를 들어 버려진 농촌에 대해 발효식품에서 다시 전통적인 흐름을 찾고 세계적인 상품으로 특화시킬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박
: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광주가 문화도시라는 간판을 걸고 출발하는 시점에서 '우리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곧 문화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발효음식과 같이 부가가치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은 이를 통해 경제적인 연관도 지어볼 수도 있고 말이죠.
나
: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는 말씀이신가요?
박
: 네.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문화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람들에게도 사업아이템을 발굴해 경제적인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비전을 주어야 합니다. 꼭 광주가 자동차나 냉장고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서야만 잘 살 수 있다는 생각보다 문화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돼야 한다는 것이죠.
사회
: 지금은 문을 닫은 계림극장, 한일극장, 태평극장 등의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해 문화전당과 연결되는 작은 전당들로 꾸미는, 건물프로젝트가 아닌 도시프로젝트를 꿈꿔야 한다는 의견을 보태고 싶습니다.
박
: 동감입니다. 웅장한 건물만이 랜드마크라는 것은 어찌보면 구시대적인 발상입니다.
나
: 위대한 예술작품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작가의 직관과 감성으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전당 당선작이 뽑혔으면 나머지 과정은 그 작가에게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점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회
: 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러한 좌담회도 어찌 보면 작은 부분의 시민참여가 아닐까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