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군민의 날은 'DJ 성토의 날'
무안 군민의 날은 'DJ 성토의 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5.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화갑 의원에게 쏟아진 농민들의 분노 / '무안군민의 날'은 차라리 'DJ성토의 날'이었다. 지난 7일 잔뜩 찌푸린 날씨 속에 초당대학교 운동장에서 무안군민의 날 행사가 열렸다.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각 마을마다 많은 농민들이 나와 체육경기와 각종 공연을 지켜보며 흔치 않은 축제를 즐겼다. 점심시간을 넘기면서 술이 돌고, 여기저기 들려오는 트롯 가요에 흥이 한껏 올랐다. 무안의 주산물인 양파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한 '양파아가씨 선발대회'가 펼쳐진 본무대 앞. 여기저기 신기한 듯 미인대회를 관람하는 농민들은 빗속에서도 마냥 즐거웠다. 행사가 끝나고, 양복을 입은 한 신사가 경호원과 호위대의 보호 속에 단상에 올랐다. 무안이 배출한 민주당 한화갑 의원이 바로 그였다. 인사말이 길어질 무렵, 좌중이 술렁이며, 한쪽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여러분들의 고충을 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중국마늘을 막아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 앞으로 충실히 국정을 수행해 나가겠습니다." 한의원의 이같은 말이 끝나자, 농민 한사람이 목소리를 한껏 높여 외친 한마디. "당신이 안다고? 알긴 뭘 알아?" 분노의 한마디가 터지자 여기저기서 그에 동조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사말이 끝나고 단상에서 내려오는 한의원을 기다리고 있던 농민들은 마늘문제와 관련해 얘기 좀 하자며 면담을 요청했다. 경호원들의 제지 속에 바쁘다는 이유로 한의원은 자리를 떴고, 남은 이들은 한탄을 쏟아내며 또 다시 축제열기 속으로 묻혔다. 한의원에게 면담을 요청하던 그 농민들을 만나 보았다. 무안군 운남면 연리에 살고 있는 기노판(65세) 씨와 정호길(68세) 씨가 바로 그들이었다. 마늘과 양파, 그리고 벼농사. 요즘 돈 안되는 대표적인 작물들을 재배하고 있다는 그들은 분노섞인 목소리로 '한'을 풀어냈다. "이제 우리가 하소연할 데가 어딥니까?" "농협 빚독촉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차라리 속 편하게 땅을 가져가시오." 실패한 농정에 대한 그들의 한맺힌 외침은 차마 자리를 뜰 수 없게 했다. 기자의 손목을 부여잡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빚독촉으로 날아오는 종이값도 아깝소. 맨날 빚갚으라고 말만 하면 뭐합니까. 도대체가 빚을 갚을 수 있게 농정을 해야 되지 않겄소. 정부에 있는 놈들이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겄어. 우리 운남땅에 맞는 작목을 갖다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그놈들 일 아니요?" 한화갑 의원에게도 할말이 많다는 농민들. "우리 맘을 다 안다고? 그래. 한화갑이 중국마늘 막으려고 수고한 줄 다 아요. 그런데, 핸드폰 팔아먹을라고 마늘 포기했으면, 그 대가가 우리한테도 와야 될 거 아니요? 기자양반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요?" "우리는 부자되고 싶은 생각도 없소. 지금 있는 빚만 갚을 수 있다면 우린 죽을 때까지 농사지을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요. 아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란 말이요. 우리 동네에 빈집이 아홉 채요. 똑똑한 아들 공부시킬 돈이 없어서 재영(김재영, 운남면 연리에서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음)이가 죽은 것이 벌써 7년 됐네. 그때랑 지금이랑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으니, 아 도대체 어떻게 살란 말인가?" 거침없이 쏟아지는 이들의 성토는 이제 농협에까지 이른다. "우리가 농협직원들 먹여살리는 사람들인가? 왜 그렇게 농협에는 직원이 그렇게도 많은가. 고생하는 놈들은 말단 직원들이고, 위에 놈들은 가만보고 있으면, 감시하는 놈들이여." "우리는 알 수가 없어. 어째 종자는 비싸면서, 양파는 그렇게 똥값인가 말이여." 매년 열리는 군민의 날. 이날은 시름에 잠긴 이들에게 한판 놀이로 그들의 시름을 달래는 날이다. 허나, 이날 모여든 사람들은 시름만 한사발 더 마시고 돌아가는 듯했다. 정부에 의탁할 맘도 없다는 그들. 대책없는 농정,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농산물들, 병들고 늙어만 가는 몸뚱이. 요새 농촌을 말하자면 그렇다. 양파아가씨 뽑는다고 양파가 잘 팔릴 리 없다. 당연히 '군민의 날' 치른다고 군민의 날이 되는 건 아니다. 적어도 농사짓는 보람이라도 찾게 해달라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나 하는지, 군수도 국회의원도 사진찍고 악수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들이 개미만하게 보이는 운동장 끝 한켠 천막 속에선 춤추는 시골 아낙들의 흥겨운 춤사위와 함께 뽕짝메들리만 신나게 울리고 있었다. <오마이뉴스 제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