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문건 광풍의 당리당략적 득실 분석
X파일 문건 광풍의 당리당략적 득실 분석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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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석 칼럼] 데일리서프라이즈 정치전문기자

광풍이 몰아칠 때 대처하는 방법은 대략 세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방법은 쥐 죽은 듯이 있는 것이다. 태풍이 몰아칠 때 위험한 둑 위를 걷는다는 것은 만용이다. 그렇지 않는 것이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다. 대략 광풍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들이 즐겨 취하는 방법이 되겠다.

둘째 방법은 그 광풍 속에서 함께 날뛰는 것이 되겠다. 글줄깨나 쓴다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맞아도 같이 맞는 것이요, 틀려도 같이 틀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크게 실점하지 않는다.

셋째 방법은 이 광풍의 물결 속에서 흘리고 지나친다든지 하는 점을 제 잘난듯 꼭 한마디 하는 것이 되겠다. 이건 용기도 필요하고, 약간은 상궤에서 이탈하는 사고방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욕먹기도 십상이다. 그러나 위험에 이익이 있다고 했던가. 이 방법을 제대로 설득력 있게 잘 사용한다면 약간은 점쟁이 기질이 있는 예지자 쯤의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사실 내 글쓰기는 어줍잖은 솜씨지만 이 세번째 방법에 가장 가깝다고 자평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기 위해서 나는 지금껏 노력해 왔고, 그런 노력이 어떨 때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어떨 때는 엉뚱한 소리 한다는 얘기를 듣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삼성과 이건희, 홍석현을 위한 변명’이란 약간 튀는 제목의 내 컬럼은, 말하자면 그런 내 글쓰기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설명드릴 수 있다. 독자들이 내 컬럼에 동의를 하든 동의를 하지 않든 말이다.

내 글을 유심히 읽어본 독자들은 그 컬럼이 실은 삼성과 이건희, 홍석현을 위한 변명이 아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내 의도에도 불구하고 튀는 제목 그대로 오독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에게 어떤 의도가 있거나, 그의 머리가 나쁘거나, 나의 글솜씨가 부족했거나 셋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도청은 불법적인 것이고 민주사회의 근간을 파괴하는 악랄한 범죄행위란 내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그러한 불법적인 도청의 결과 드러난 일련의 놀랄만한 사실에 대해서 일반적인 독자와 엄청나게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전두환 노태우 시대의 금권유착의 전형이며, 김영삼 시대와 김대중 시대에까지 이어졌던 우리 정치의 가장 나쁜 형태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입에 거품을 물고 삼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엄격히 말하자면 나는 찬성의 입장에 서 있다. 변화하는 정치의 패러다임을 나름대로 관찰하면서 해왔던 내 글쓰기 작업은 어쩌면 그와 같은 행태의 근절이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삼성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재벌들이 정치권과 유착해 거래해왔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가. 그건 아니다. 불법적인 도청의 결과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 실상이 드러났다는 걸 제외하면 새로운 팩트는 별로 없다. 특정한 이유 때문에 정치권과 거래했던 재벌 가운데 유독 삼성의 행적이 드러나 그들이 집중타를 맞고 있는 것일뿐, LG그룹은 김영삼 정권 시절 이회창 측과 아무런 거래가 없이 초연했을 것이며, SK그룹은 정치권과의 유착을 외면만 하고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근절해야 하는 것은 정치권과 재벌간의 유착이다. 수백억원의 돈을 건네주고 정보를 건네주고 해서 그 대상이 집권했을 때 받을 반대급부, 이것이 우리 사회를 왜곡시켰기 때문에 그러하다. 참여정부의 탄생 배경 자체가 바로 그러한 염원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 정권 들어서도 핵심에 있는 인사들이 과거 정권처럼 재벌에게서 수백억원씩 받아 챙기고 검은 뒷거래를 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지만, 나의 믿음과는 관계없이 이 정권이 지나가면 사실 여부는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삼성에 대해서는 온갖 매체에서 들고 일어나서, 온갖 필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충분히 비판하고 꾸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의 초반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글 쓸 기회를 놓친 컬럼니스트로서, 그런 비판의 광풍 속에서 지나치고 있는 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다만 독자들에게 미안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침 삼성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부담스런 나머지, 불법적인 도청 쪽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제도언론과 발이라도 맞춘 격이 돼 버렸다는 점이다. 원래 군자는 오얏나무 아래에서 모자 고쳐 쓰지 않는 법인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지는 말기를 빈다. 삼성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관점을 흐린다는 식의 비난은, 적절하지도 않거니와, 나의 능력을 너무 부풀리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두번이나 될뻔했다가 만 이회창 씨와 거래한 삼성에 대한 비판은, 고명하신 다른 필자들의 몫으로 놓아두고, 나는 여전히 남들이 간과하고 지나는 몇가지 점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자, 이번 사건으로 과연 정치권의 여러 주체들은 어떤 득실이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 그것이다. (삼성과, 이건희 홍석현 씨는 정치권의 주체가 아니므로 빼겠다)

가장 큰 손해를 본 주체는 역시 부관참시 당한 격이 된 이회창 씨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정치적 뒷거래가 그 세부적인 면까지 까발려지면, 뒷거래의 당사자들에겐 죽음이다. 친구끼리 농담하는 것도 녹취해 글로 보면 얼굴 뜨거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인기로 먹고사는 정치인이야 어떻겠는가.

검은 뒷거래의 당연한 결과라고 얘기하지는 마시라. 지금 활동하고 있는 유력한 정치인들도, 안보이는 곳에서 돈 얻어쓰면서 나눈 얘기들이 낱낱이 까발려지면, 이회창 씨와 삼성의 뒷거래 못지 않다. 드러나느냐, 숨어있느냐 이것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회창 씨는 다 드러나 버렸다. 거의 부관참시형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번째 손해를 본 주체는 누구일까. 누구나 한나라당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번 사건으로 두번째로 피봤다고 나는 평가한다. 왜 그런가. 홍석현 전 주미대사를 기용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처럼 “알고도 기용했다”고 작문할 수도 있겠지만, 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 정권이 아니라, 정경유착이란 점에서는 훨씬 관대했던 김영삼 김대중 정권이라 할지라도 이런 사실을 알고 기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정치만큼 결과가 중요한 것도 없다. 몰랐다 하더라도 하필이면 기용한 사람이 그런 광풍을 불러일으킨 핵심 당사자였으니, 이유야 어찌 됐든 그를 기용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자, 세번째로 '피 본' 주체는 누군가. 나는 ‘한나라당’이라고 하는 명칭이라고 평가한다. 나는 한나라당이 쉽게 이름을 바꾸지 않는 데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바라봐 왔지만, 이제 이회창 씨의 손때가 묻은 ‘한나라당’이란 명칭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나라당 = 이회창 당 = 뒷거래당’이란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한나라당이란 명칭을 버리는 것 외에는 길이 없겠다.

네번째를 얘기해야 할 때가 됐다. 실은 이들이 가장 큰 잠재적인 피해자일지 모른다. 그들은 누구인가. 불법적인 도청의 대상은 됐지만, 아직은 드러나지 않고 있는 재벌들, 정치인들, 그리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사주들이 그들이다.

지금이야 온갖 매를 삼성이란 재벌과, 이건희란 재벌회장과, 홍석현이란 전직 언론사주가 다 맞아주고 있지만, 이 광풍이 지나가면 다음 대상은 남아 있는 재벌들과 남아 있는 언론사주들이 될 것이 틀림없다.

언제 자신들의 적나라한 대화가 까발려질지 전전긍긍해야 할 지경이니 어찌 가장 큰, 실질적인 잠재적 최대 피해자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계속 피해자만 늘어놓기도 뭣하니 최대 수혜자로 넘어가자.

최대 수혜자는 국회의원 달랑 10명 있는 민주노동당이다. 개혁이란 측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적 이미지와 따로 노는 잡탕정당 열린우리당에 비해 훨씬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다, 삼성 등 재벌들과는 인연(?)을 맺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가장 부채가 없는 정당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계속 지갑을 줏는 격이다. 열심히 기성정치권을 비판해 주길 바란다. 더불어 개혁이란 면에서 실은 민주노동당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 격인 노무현 대통령도 목청 높여 비난해주길 바란다. 누가 뭐래도 홍석현 씨를 주미대사로 기용한 최종 책임은 노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니 말이다.

다만 민주노동당도 어느 정도 큰 덩치가 됐을 때, 지금의 초심을 버리지 말기를 기대해 본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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