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스며든 나의 삶
땅에 스며든 나의 삶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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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농촌은!]양기운 진도군 농민회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여기가 고향이기는 하지만 학교 다닌다는 이유로 객지에 나가 생활한 것이  1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기만 했다. 진도가 고향이면서 처음으로 가본 곳들과 본 것들이 수두룩했으니 과히 “진도 촌놈”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내가 농사를 짓겠다고 생각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농활을 통해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대학시절 조국이라는 것을 알았던 나는 하나 된 조국을 위해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러나 나는 그 이전에 농사를 배워야 했다. 형님들의 일을 도와드리면서 농사도 배우고, 형님들이 살아온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다.

넓디넓은 들판과 익어가는 곡식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즐거워야 할 텐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것저것 갚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 것이었다.

빚을 갚지 못해서 개인 파산을 당한 형님들을 보면서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땅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땅이 우리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특히나 1년 동안 자식 키우듯이 애지중지 키워온 스스로 폐기해야 하는 농민들의 심정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올해 초 진도의 주산물인 겨울대파 폐기 현장을 보면서 그 누가 꺾으려고 해도 꺾이지 않는 삶임을 확인한 것이다.

우리 땅을 지키고 식량을 생산해 낸다는 자부심이 이름 없는 들풀처럼 개방농정과 수입농산물들이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더라도 언젠가는 우리 땅에서 자라난 농산물을 올리겠다는 희망의 씨앗을 오늘도 심어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농민들의 삶을 존경할 수밖에 없고 나 또한 어렵더라도 그 삶을 이어가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다.

2005년은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한해가 된다.
바로 나의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면적은 얼마 되지 않지만 모종을 키워 논에 모내기를 하는 날 자식을 낳은 부모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침저녁으로 논에 가면서 논에 물은 부족하지 않은가? 논에 적응을 잘하면서 몸살은 하지 않은지 또 뿌리는 잘 내리고 있는지 등이 걱정이 되서 아침저녁으로 논에 발걸음을 한다. 농작물들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만큼 정성을 쏟아야 풍년농사를 지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놈의 세상이 어떻게 되갈려고 그러는지 이제 쌀까지 개방을 한다고 덥석 약속을 해버렸다. 풍년농사를 지어도 내달 팔 곳이 없어진 이 세상이다. 자기 집안의 곳간을 남에게 내 주고서는 결코 흥할 수가 없다. 나는 오늘도 내 논에 가서 김매기를 한다. 그리고 쌀 협상 국회비준을 막아내기 위한 6·20 농민 총파업을 준비한다. 이 땅과 쌀은 우리 농민들의 모든 것이며 생명이다. 미국에게 결코 우리의 생명을 맡길 수는 없기에 아스팔트로 오늘도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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