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런 선생님이 되었으면
나도 그런 선생님이 되었으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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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농촌은] 조경선(고흥도화고등학교 교사)
   
첫 발령받은 학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짐을 옮기면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일기장이 눈에 띄어 열어보았다. 아홉 살이었던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국어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또박또박 적어두었다.

농사짓는 여성으로 살면 참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신념도 잡아끄는 오래된 꿈. ‘국어선생님’의 꿈은 결국 흙묻은 내 발꿈치를 잡아 버렸다.

서른 다섯 살인 나는 그동안 뿌리내렸던 고흥 땅 도화면 한 고등학교의 신규 국어선생이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였던 89년에 전교조가 창립되었고, 90학번으로 입학한 우리들에게 사대 선배들은 ‘참교육 1세대’라고 환영해 주었다. 이제 그 ‘참교육’을 스스로 실천해야 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고등학교에 들어와보니 선생님들의 열정과 정성이 대단하여 놀라곤 한다. 교과수업, 생활지도, 담당 교육행정 업무로 과로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야간자율학습지도, 기숙사 지도까지 하루종일 아이들과 일의 틈바구니에서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참 많으시다. 늦깍이 신규는 모범적인 선생님들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학교는 인문계와 실업계가 섞여 있는 면단위의 작은 고등학교이다. 그래서인지 교사가 준비한 수업내용을 받아들이기에는 학생들이 무척 힘겨워 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엊그제 체육대회를 하면서 느낀 것은 저마다의 소질과 특징이 다 있다는 것이다. 많이 웃고, 힘껏 노력하는 모습과 함께 하면서 획일적인 교실 수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지난주에는 순천대학교에서 열리는 고교생 백일장에 학생 한 명을 지도해서 함께 참가하게 되었다. 다섯 살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 아이는 네 명의 딸 중에 둘째 딸이다. 네 명의 손녀딸이 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커온 것이다. 씩씩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그 아이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장려상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백일장이 열리는 강의실로 들어간 지 1시간 가량 지난 이른 시간에 ‘저 다 쓰고 나왔어요’ 하는 그 아이의 말에 보통 실망을 한 것이 아니었다. 혹시 포기한 것은 아닌지, 성의있게 쓰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네가 천재냐, 그렇게 빨리 내고 나오게!” 하고 쏘아붙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전국에서 예심을 거친 150여명의 학생들 가운데 장려상을 받았으니 잘 한 것이다. 아이들을 끝까지 믿어주고, 격려해 주지 못한 나는 스스로 많은 반성을 했다.


자신이 글을 잘 쓰는 지도 몰랐다는 아이, 아버지가 붙여주는 50만원의 돈으로 할머니와 한 달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가는 씩씩한 아이…
이런 숱한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나는 그들에게 역사와 현실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힘든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싶다. 그리고,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에 계시면서 심사를 해주신 시인 곽재구 선생님, 소설가 이청준 선생님을 직접 보면서 나도 이제는 글 쓰는 국어선생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지금도 선생님들을 보면서 삶에 자극을 받고, 목표를 세우고 힘을 낸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선생님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조경선 고흥도화고등학교 교사 blue0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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