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소풍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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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농촌은] 이태옥 전남 영광농민
전날 흩뿌린 비로 원불교 성지의 잔디밭은 더할 수 없이 푸르렀지만 온몸이 떨릴 정도로 싸한 한기까지 덤으로 전해준다.

오늘은 마을 할머니 공부방 소풍이다. 전날 촉촉이 내린 비로 걱정이 많았는데 아침에 뽀얀 하늘을 내밀어 주니 다행이다 싶다.  준비한 사람들의 수고로움보다 오랜만에 나들이 간다고 나들이옷 갖추고 뽀얀 분바르며 설레는 마음안고 잠들었을 마을 공부방 할머니들 마음이 행여 다칠까 싶었다.

할머니들과 함께 놀고 싶다며 따라온 이주여성 공부방팀의 ‘다츠’와 ‘파’가 할머니들에게 어찌나 곰살 맞게 굴던지 단주리 공부방 공임할머니는 며느리 삼고 싶단다.

이말에 몽골서 시집온 다츠는 “나 결혼했어요, 남편 있어요”라며 더듬 더듬 손사래까지 친다. 다츠가 이뻐서 하는 소리라는 설명까지 오랫동안 곁들이고 나니 점심시간이다.

풍선놀이, 양파링 게임 등 뛰고 놀 때는 몰랐는데 점심 먹으려고 펼쳐놓은 자리가 썰렁하고 보니 아무도 밥 넘길 염을 못낸다.

원불교 성지측에 급히 식당을 섭외해 그곳으로 옮겨와 준비한 음식들을 펼쳐 놓으니 추위는 날라가고 입맛에 군침이 돈다. 월산리 할머니들의 묵은 김치와 채지(무생생채)만으로도 입이 째지는 줄 모르고 밥을 몰아넣었다.

다츠와 최근 베트남에서 결혼해서 온 파에게 이것 저것 먹어보라고 권해보지만 김 하나에 의존해서 밥을 먹는다. 할머니들도 챙겨보지만 오히려 이들에겐 고역이지 싶다.

권커니 잣커니 하며 술추렴도 한 순배씩 하고 박수게임으로 마무리 하며 맛난 음식을 접었다. 아마도 남도에서 가장 예쁜 백수 해안도로와 영광 마파도 촬영지를 돌아 갈 때는 “평생을 영광서 살았어도 처음 와 본다”는 할머니들 반응에 죄송스런 마음도 들었다.

“안즉 해도 안떨어졌는디 벌써 가자고?” 오후3시 행사를 마치려하니 할머니들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한바탕 관광차춤 출 생각에 들떠 있었던 할머니들은 못내 서운하신가 보다.

학생들이 너무 불량하게 놀면 안된다며 농반 진반 설득해서 프로그램을 마쳤지만 마을에 돌아가서도 음주가무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셨다는 후일담도 들린다.

겨울 농한기부터 시작한 마을 공부방 할머니들의 열정은 고시생도 울고갈 정도이다. 감자심고, 고추심고, 요즘 한창 모내기에 쫒기는 몸으로 삭신이 무너져 내릴텐데 주2회 공부방 시간만 되면 빨딱빨딱 일어선다는 할머니들...

“이런 것은 엄니들 갈치는 우리들도 틀린당께. 그것 쪼까 틀린다고 사는데 지장 읍응께 다음 넘어갑시다”며 설득해도 기언치 한글자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단주리 귀님할머니까지 그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꼭 그만큼의 한도 담고 있다.

“쪼까 학교갈라 치문 애기봐라, 밭메라”하는 통에 학교문턱만 밟다 말았다는 우리 어머님 말씀 마따나 배우고 싶어도 여자라서 무작정 희생해야 했던 우리윗세대 여성들에게 배움은 꿈이고 희망이다.

“기냥 공부하는 것이 좋제, 핵교 댕긴께 별군데 다 다녀보고 재밌구만이라” 할머니 학생들에게 공부방 소풍은 세상과 소통의 끈을 하나 더 엮어 주었나 보다.

“다음에는 꼭 노래방 가서 노래할랑께 가사 좀 갈차줘”
다음 소풍때는 노래방에서 가사를 읽어가며 노래 부르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듯싶다.

/이태옥 전남영광농민 tolee12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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