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띄우는 어느 해고노동자의 편지
가정의 달에 띄우는 어느 해고노동자의 편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5.0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울하고 비참한 달 5월
   
▲ GS칼텍스 해고노동자 이병만(39)씨.
오월.
사람들이 일년 중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달이 오월이다. 우리는 오월을 가정의 달이라 부른다. 그 만큼 가족끼리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도 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하여 새로운 정을 느끼며 못다한 얘기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가장 많은 달이 오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GS칼텍스(구LG정유)의 6명의 구속자 가족과 10명의 해고자 가족에게는 가장 우울하고 비참한 달이 오월이라 말하고 싶다. 그들도 고사리같은 아이들을 목마태우고 뛰어놀면서 오월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맘껏 즐겨보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는가? 이제는 그런 평범한 일조차 꿈과 소망으로 변해버리는 현실 속에 구속자, 해고자 가족은 생계를 생각해야하며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랑하는 남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꿈이요 소망이 되었다.

지난 여름, GS칼텍스 노동자들의 몸부림. 정권과 자본, 그리고 언론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졌던 GS칼텍스 노동자들의 파업. 어느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GS칼텍스 노동자들의 파업을 왜곡하거나 폄하하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그들이 줄기차게 외쳤던 "주40시간 쟁취를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정규직화", " 기업이윤에 대한 사회발전기금 출연을 통한 기업의 사회적 책무" 이러한 사회적 요구들이 오히려 배부른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로 매도하면서 난도질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을 받아들이며 노사정 대화에 복귀하여 비정규직 법안을 논의하고 자본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외쳐대고 있다. 작년 GS칼텍스 노동자들의 파업사태를 정권과 언론이 정확한 보도를 통하여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렸더라면 지금의 GS칼텍스 노동자의 처절한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자본으로부터 부당한 해고나 처우를 당했을 경우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지켜주고자 만들어진 중앙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정문에서 일인 시위를 한지도 벌써 두 달째 접어들고 있다. 왜 우리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야만 하는가? 하루에 수도 없이 자문해보지만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을 뿐이었다. 일인 시위를 하다보면 왜 그렇게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많은지 정말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원직복직은 어린아이 동화책에 나오는 꿈과 같은 이야기일까? 벌써부터 생계의 어려움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올해 칠순인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해고 사실을 들으신지라 당신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안겨드린 아들에게 아무런 말씀도 없으신 어머니.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머리 조아리고 살고 싶은 심정이 왜 없겠습니까? 반성문 쓰고 잘못했다고 빌었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마음은 왜 없겠습니까? 우리 아이들 생각하며 남들처럼 좋은 옷에 여행도 가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당당함을 교육시키고자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구속되어 있는 동료를 생각하고 해고자 동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저히 비굴한 삶을 살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어려움 속에서 웃음을 간직하신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 저도 당당한 모습으로 하루를 살아가렵니다.

여태까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던 아내가 유난히 투덜되는 한달이었습니다. 제가 왜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까? 예전 같으면 아이들과 이곳저곳을 다니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을텐데.... 지금은 지인들조차 만나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직도 아내는 남편의 해고 사실을 인정하려들지 않습니다. 힘없이 움직이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항상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다른 아이들처럼 다 해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할 뿐입니다.

다솜아~ 다은아~ 재륜아~
미안하다. 아빠를 용서해다오.
아빠는 너희들을 보며 용기를 얻고 있단다. 항상 건강하게 자라다오.
아빠 반드시 복직하여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구나.
사랑한다.

/이병만 mandolly@hanmail.net

*편집자주 - GS칼텍스 해고노동자 이병만(39)씨는 지난 2월 2일 KBS시사프로 '시사투나잇'에 파업과 관련된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고 해고돼 현재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신청'을 의뢰한 상태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