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깎이와 연필 깎기
▲ 한 아이의 연필을 깎아주고 난 뒤로 아침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연필을 깎아달라고 한다. ⓒ주국전 | ||
"애야! 이리 줘 봐라. 내가 깎아 줄께!"
손을 부들거리며 연필 끝을 들이파고 있던 아이는 겸연쩍게 웃으며 들이민다. 그 아이가 깎고 있던 연필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뭉떵뭉떵 들이 파진 연필 끝 부분이 너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허~ 그 녀석. 참 손재주 없네."
내 손이 움직일 때마다 그 녀석의 우스꽝스러웠던 작품(?)은 연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꽤 오래된 솜씨였지만 몸으로 익혀 놓았기 때문일까? 연필 끝이 제법 매끄럽게 다듬어졌다.
내 나이쯤 훔친 사람들치고 '도루코' 칼로 연필 안 깎아본 사람들 없겠지만 요즘엔 연필을 손으로 깎아 쓰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 '연필깎이'라는 기계의 등장 이후의 아이들 말이다.
연필 한 개 꼭 맞는 구멍에 콕 집어 넣어 손잡이를 둘둘 잡아 돌리면 사과 껍질 벗겨지듯 2, 3초에 한 개씩 반지르하게 깎아지는 '연필깎이'. 그 기계가 언제쯤 발명(?)되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그 기계를 처음 만났을 때 신기롭게 여기며 멀쩡한 새 연필을 몇 개씩 잡아 먹던 기억은 지금도 새록거린다. '연필깎이'가 어쩌면 문방구 디지털화의 단초였을지도 모른다.
연필깎이만이 아니다. 세상은 많은 것들이 참 많이도 빨라졌고 편리해졌다. 마우스 하나 까딱 거려 무한한 것들을 취할 수 있는 세상이지 않는가. 30여년 전에 공상 만화 영화에서 보았던 것들이 지금은 안방과 학교에 현실이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빠르고 편리해진 것이 느리고 불편한 것보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재되어 있는 현실들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빨리, 많이, 먼저 알아야 한다고 곳곳에서 종주먹 당하며 '대열'에서 이탈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아이들을 보면서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아이들에게 연필 깎으며 향기를 콧등에 앉혀 보라는 폼잡는 얘기는 한가로운 사치일지도 모른다.
학교, 학원으로 몰리고 쫓겨다니는 아이들에게 숨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주어야 한다. 휴대폰과 컴퓨터가 친구일 뿐인 아이들에게 운당장의 땀 섞인 숨결을 돌려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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