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발 위원장, 동지가 죽였다"
"박영발 위원장, 동지가 죽였다"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5.02.24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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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치의가 비트정리 과정서 반발 사살
   
▲ 1954년 박영발 전남도당 위원장의 "죽음의 진실"을 언론에 첫 공개 증언한 박남진(83. 전남 나주시 다시면)옹. 박씨는 당시 박위원장이 지리산 비트에서 운영했던 "조국출판사" 편집팀으로 활동했다.ⓒ 김경대
박영발 조선노동당 전남도당 위원장의 죽음에 대해 새로운 증언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박 위원장의 사망에 관한 설은 몇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이중 지리산 빨치산을 주제로 1988년에 초판발행된 소설 '남부군(지은이/ 이태, 출판사/두레)’과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지은이/강만길, 출판사/창작과비평사)에서는 1954년 1월 뱀사골에서 자결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다른 설은 토벌대에 의해 사살됐다는 설로 1954년 4월 12일치[동아일보] 보도에서 드러난다. 당시 신문기사는 '수색작업을 벌이던 모부대 박상옥 중사에 의해 비트가 발견돼 사살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박위원장의 죽음에 대해 그 동안 알져진 사실과 달리 당시 활동했던 빨치산 대원 및 일부 장기수들을 통해 "비트에서 내부 부하에 의해 사망 한 것"으로 새롭게 제기돼 왔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비트에서 생활 했던 한 빨치산 대원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당시 박 위원장이 지리산 비트에서 운영했던 '조국출판사'에서 필경사로 일했던 박남진(83. 전남 나주시 다시면)옹은 '박 위원장의 죽음의 진실'을 지난 22일 본지를 통해 언론에 첫 공개증언했다. 박옹은 그동안 일부 생존 빨치산 및 학자들에게 이 사실을 증언해 왔었다.

박 옹은 19살 때 결혼하여 1947년 나주시 영산포에서 서점 '우리서원'을 운영하던 중에 3살난 딸 아이와 임신 5개월째인 부인을 남겨두고 1950년 입산한 후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지리산에서 박 위원장이 책임을 맡았던 조국출판사 필경사로 일한바 있어 새롭게 드러난 죽음의 진실에 확신을 더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 박씨는 "조국출판사의 첫 공간은 반야봉 아래 계곡에 온돌식 비트를 만들어 활동하던 중 1953년 12월 15일 반야봉에 대규모 토벌대가 진주하는 바람에 본지가 최근 발견한 비트에 무전사 1명, 의사1명, 여성비서 1명, 박위원장 등 4명이 은거하고 박 옹 등을 포함한 나머지 7명은 보급투쟁 등을 하면서 지리산 일대를 떠돌았다"고 당시를 증언했다.

박 옹이 전하는 박 위원장이 주치의로부터 사살을 당한 진실은 이렇다. 박 위원장과 함께 은신동굴에서 함께 지냈던 주치의 박모씨는 1953년 5월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당해 이동이 매우 힘겨운 상태였다. 동굴생활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식량이 떨어지고 토벌대의 수색작전은 점점 비트를 향해 압박해오자 일행 중에서 자연스럽게 비트를 옮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그러나 총상으로 인해 이동이 거의 불가능했던 박 모 주치의는 스스로 '장소를 옮기게 되면 혼자 버려지게 될 것'이라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다 뜻밖의 결심을 하게 된다. '혼자 버려지느니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1954년 2월 21일 비트 보초 중 박 위원장 등 총 3명에게 30연발 칼빈소총을 난사했다는 것.

갑작스런 총기난사로 동굴에 있던 박 위원장과 무전사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이모 여성비서가 몸에 지니고 있던 수류탄을 던져 의사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이 여성비서는 부상과 허기로 동굴에서 힘겹게 버티다가 다음날 22일 식량을 전해주러 온 조국출판사의 나머지 대원을 만나 목숨을 건진다.

이같은 박 위원장의 죽음의 진실이 사실대로 알려지지 못한 이면에는 몇가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 옹과 일부 장기수들에 의하면 '자살설'은 빨치산 내부에서 발생한 사고를 감추려는 빨치산들의 의도성 때문으로, 토벌대에 의한 '사살설'은 경찰과 군인의 '전과 부풀리기'에 따른 '논공행상'으로 분석된다는 것.

이같은 박 위원장의 '죽음의 진실'이 당시 빨치산 중 일부 생존자들에 의해 구전돼 왔으나 공개적인 언급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직도 당시 사건의 당사자 및 관련자의 가족과 후손이 살고 있어 자칫 심각한 갈등과 오해 등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공개적인 언급을 삼가 해왔다"고 일부 증언자들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박 위원장 비트 발굴을 계기로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아픈 우리 현대사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이제는 역사의 한마당으로 복원돼야 한다"며 "관련자 가족들은 아픈 가족사이지만 화해와 상생의 입장으로 더 큰 '역사적 진실찾기'를 보듬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번 박위원장의 비트 발견과 죽음의 실체 확인을 계기로 "빨치산 역사를 좌익이라는 이념의 올가미에서 풀어 실존했던 우리현대사의 객관적인 역사로서 복원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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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 2005-02-25 10:34:09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겠지만 꼭 지금 싯점에서 까 밝혀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