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태칼럼]광주에는 ‘그것’만 없다?
[고규태칼럼]광주에는 ‘그것’만 없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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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주년 기념축사]

   
광주에는 없는 게 없다. 다른 곳엔 없는 것마저 광주에는 있다. 안에서는 안 보이겠지만 필자같이 밖에서 보면 다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자. 광주에는 계승해야 할 정신이 있고, 기념재단이 있고, 크고 작은 기념공원도 여럿 있다. 국립묘지도 있고, 국가기념일도 거머쥐고 있다. 여기저기 번듯번듯한 기념 조형물도 많고, 무엇보다 돈이 많다. 적잖은 사람들에게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보상이란 이름으로 주어지지 않았던가. 

또한 광주에는 사람이 많다. 입바른 소리 잘 하는 사람, 시시비비 잘 따지는 사람, 매사에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는 사람, 눈치 빠른 사람, 예술가, 평론가 등등이 광주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광주는 국가유공자의 도시다. 국가유공자의 인구밀도가 광주보다 빽빽한 도시를 필자는 알지 못한다. 한때는 필자도 광주운동권의 말석에 있었던 경험 덕분인지는 모르되, 예컨대 친하게 지내는 열 가운데 다섯이 국가유공자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뿐인가. 광주에는 비엔날레가 있고,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생성된 ‘혁혁한 무용담’도 즐비하다. 그리고 머잖아 아시아 문화를 주도하는 전당도 세워질 것이다. 이른바 ‘문화수도’ 건설을 위하여 몇천억원이 아니라 몇조 단위의 거액이 이미 투여되기 시작했다. 광주는 이렇듯 축복받은 도시요, 없는 게 없는 도시다.  

그러나 광주에는 ‘그것’만은 없다. 필자는 ‘그것’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보다 필요한 곳이 광주라고 보는데 하필 ‘그것’만은 없다는 것이 큰 유감이다. 때문에 섣불리 광주의 희망을 말하기 어렵다. 그것은 바로 ‘신문’이다. 시민의 눈,귀,입이 되어줄 반듯한 신문 하나 못 만들고서야 어찌 정신계승을 논하고, 기념사업을 궁리하고, 문화수도를 운위하고, 아시아 문화의 전당을 드높이 세울 수 있겠는가. 

저 고립무원의 5.18 현장에서 우리가 갈망했던 것은 안팎으로 눈,귀,입이 되어주는 신문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반가웠던 [투사회보]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 정신은 계승하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투사회보]는 기념하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투사회보]를 움켜쥐고 ‘안광이 지배를 철하도록’ 읽고 또 읽고 다른 사람들과 나눠 읽던 언론문화는 문화수도에서 제외돼도 괜찮은 것인가? 위대한 광주가 시민의 힘으로 광주를 대표하는, 호남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신문 하나도 못 만든단 말인가? 그러고서 광주를 문화수도로 만들겠단 말인가?

물론 광주에는 지금 수많은 신문사가 있고 신문이 있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광주에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 신문이 많다. 부침을 거듭하고는 있지만 광주만큼 신문사 세우기를 좋아하는 곳이 또 있으랴. 그런데 문제는, 이 신문들이 제 기능과 역할을 다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이 정론, 비판, 대안 제시로 요약되는 신문의 본분을 다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비록 주간신문이지만 [시민의 소리]를 주목한다. 설립자나 대주주의 ‘사심’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수많은 어려움, 열악하기 그지없는 조건 속에서도 지난 4년간의 고군분투는 빛나는 바 적지 않다. [시민의 소리] 지면에서 필자는 때때로 저 80년 5월의 [투사회보]를 떠올린다. 그러므로 이 신문이 정말 잘 되면 좋겠다. 시민들이 힘을 몰아주면 좋겠다. 사심없이 가담한 민주화운동의 댓가로 받은 보상금의 일부도 ‘기금’으로 모아 [시민의 소리]에 쏘아주면 좋겠다. 이 신문을 씨앗으로 삼아 광주에서 신문다운 신문이 쑥쑥 자라나면 좋겠다. 마침내 일간신문으로 발전하면 좋겠다. 

그리하여 광주시민의 힘으로 만든 신문이 광주를 대표하고, 호남을 대표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아시아를 대표하면 참 좋겠다.
 
/고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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