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생각하면 버릴게 없어요"
"조금만 생각하면 버릴게 없어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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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비누. 세탁기 물 다시 쓰기 기본/ 다 쓴 커피병이 꽃병으로/ 달력그림도 액자담으면 예쁜 선물 변신/ 99년부터 폐플래카드 모으기 시작/ 작업복.장바구니.포대로 재탄생/ "환경운동 따로 있나 쓰레기 줄이는거지"/ 광주시 서구 화정3동에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소문난 집. 이곳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박선자 주부(48)는 이제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재활용 아줌마'로 통한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는 '아나바다'운동이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옛이야기로 묻히고 있지만 박씨는 아직도 생활의 신조처럼 여기며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재활용을 통한 삶의 지혜는 박씨가 말하지 않더라도 집안 곳곳에 묻어있다. 가성소다와 폐식용유, 물을 섞어 만든 빨래비누들, 한번 세탁한 물을 욕조에 모아 정화되면 다시 한번 사용하는 것 등은 이미 박씨 몸에 배어있는 생활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박씨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길거리에 버려진 꽃 포장지가 예쁜 장식지로 변하고, 먹고 버린 요플레 통도 사회복지관에서 쓰는 컵으로 변신한다. 박씨는 또 낡은 커텐 누비는 상 덮개로, 다 쓴 커피병은 커텐 레이스 등을 달아 꽃병으로 바꾼다. 심지어 한달이 제 수명인 달력의 그림도 액자로 만들어 그 그림이 가장 어울릴만한 곳에 선물까지 하는 것이 박씨가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다. 그러던 지난 99년 박씨는 갑자기 길거리에서 폐플래카드를 줍기 시작했다. 2주 정도 걸려있다 떼는 플래카드들의 이후 활용이 궁금해진 박씨는 이곳저곳에 알아본 결과 소각된다는 것을 알았다. "소각만 하는데 그 비용이 1년에 자그마치 1억원이 들어가요. 얼마나 낭비입니까" 그래서 박씨는 재활용을 생각해 낸 것이다. 폐플래카드를 이용해 앞치마, 장바구니, 토시 등 다양한 용품들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재활용하면 1년에 30억원이 절약됩니다" 직접 절약비용까지 계산해 봤다는 박씨는 이후 쌍촌종합사회복지관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폐플래카드가 쉽게 찢어지지 않기 때문에 수출용품 포대로 사용되고 미술학원 등에서 작업할 때 훌륭한 작업복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폐플래카드를 주울 때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캄캄한 밤에만 돌아다녔어요" 재활용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쉽게 용기내기는 힘들다는 것을 안 박씨는 자신부터라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주부들에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99년 전남일보와 광주은행에서 주최했던 '환경대상'에서 폐플래카드 재활용 작품들을 선보여 대상을 타기도 하고, 서구 쓰레기 정책 진단 토론회 등도 참석하는 등 재활용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면 박씨는 어디든 마다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저 여자는 살림은 안하고 맨날 돌아다닌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한다"는 박씨가 다른 아줌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줌마 단어 앞에 '재활용'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는 것이 박씨만의 특별함이다. 때문에 박씨는 "남편과 아들 딸 모두 함께 재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그것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내가 활동하는 것이 과연 살림 못하는 여자의 모습일까요?"라며 반론을 편다. 그래서 끊임없이 생활속 지혜의 발견을 통해 아줌마의 역할을 찾는다는 박씨는 오늘도 결코 남편에게도, 아들 딸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여자라고 자부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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