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댁 이야기]영광댁 무등산에 오르다
[영광댁 이야기]영광댁 무등산에 오르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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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옥

아들놈과 숨을 헉떡이며 무등산을 오른다.
영광서 산지 14년이 되도록 무등산 한번 안 올라봤다는 핀잔을 뒤로한채 올 크리스마스 연휴는 무조건 무등산행으로 잡았다.

초입부터 다닥다닥 올라붙은 산장과 먹거리 장사들이 유혹하지만 꿋꿋이 정상을 향해 돌무더기 하나 하나에 발을 내딛는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전 고흥만을 돌아 영광의 지인들과 올랐던 장흥 천관산의 기억도 새롭다.

오랜만의 산행인지라 두발로 걷기보다 기어올라야 했지만 봉화대 주변 갈대의 을씨년스런 장관이 무등산 중머리재와 닮은듯 다른듯 하다. 무등산 능선을 마주하며 물한모금 축이니 천관산 너머 고흥땅에서 만났던 예닐곱의 여성들의 눈물과 웃음이
아슴프레 느껴진다.

고흥앞바다에 친 하우스 농사와 고흥만 벼농사로 올 한해를 버텨내며 여성농업인센터를 꾸려온 후배 해승이는 두세달전 부터 SOS를 쳐댔다. 자신이 사는 면단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에 여성운동 선배를 강사로 연결하고 나는 기사로 여행삼아 나선 길이었다.

남도의 끄트머리자락에서 크나큰 폐교 1층을 개조해 만들어낸 여성농업인센터는 추위만큼이나 어설퍼 보였지만 1년동안 얼마나 애썼을지 후배의 노고에 가슴이 아릿하다.

먹고살기 바쁜 농촌에서 여성인 "나"를 돌아보는 일이 얼마나 가능할까? 반신반의하며 진행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모인 9명의 여성들의 삶의 보따리들은 왜이리 무겁과 안쓰러운지...  복실복실 귀닜게 생긴 발포(프로그램중 이름대신 별칭을 사용했다)에게선 바다냄새와 가족, 마을을 사랑하는 훈기가 뚝뚝 떨어진다.

"나락내서 1200만원 받은뒤 빚갈이 하고난께 400만원 손에 쥐어지데요" 라며 눈물 참지 못하던 하얀이, 23살때 남편을 만난 이야기를 하다가 목이 메어 끝내 울음 터뜨린 검둥이, 농사로 망해먹었지만 그래도 건강한 몸뚱아리 있으니 뭔들 못하겠냐던 장미, 모두모두 안아주고 싶은 기특한 여성들이다.

새벽 동틀무렵 일어나 바다에서, 논밭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삭신 아끼지 않고 살아온 농촌의 젊은 여성들이 바라는 새해소망은 그저 일한 만큼 벌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고향땅에 영원히 살고싶은 마음뿐이었다. 다시 만날수 있을지, 내년 이맘때에도 고흥땅을 지켜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들이 건강하고 작은 소망 한가지라도 이루고 살았으면 한다.

한기를 느끼며 되짚어 내려오는 길엔 얼마전 농업주권 사수를 위해 미대사관과 세계적 곡물기업 카길 한국지사에 몸을 던져 투쟁한 여성농민들의 얼굴이 등산화 발뿌리에 자꾸만 채인다.

경찰들에 둘러싸여 힘겹게 몸싸움을 벌이는 일그러진 표정들엔 여주서 여성농업인센터운영하는 은주얼굴도, 구례사는 문희도, 나주 연옥이도 있었다. 그리고 카킬사에 펼침막을 들고서있는 눈이 동그란 충청도 어디메 사는 현정이는 세월을 담은 모습으로 그대로 다부진 입매로 또 외치고, 버티고 있었다. 

세상은 미친 듯이 자본화로 치닫고 생명을 버티어 내는 농업과 이를 지키려는 이들을 정부가 내팽겨쳐도 온몸으로 농촌현장에서 살아내는 이들이 있어 아직 우리는 희망을 끈을 놓지 못한다.

산아래로 내려서니 좁달막한 판자안에 잉어빵과 오뎅국물 데워내는 할머니의 굽은 손이 연탄가스 냄새에 섞여 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걱정이 인다. 가족단위의 젊은 등산객들로 꽉매운 무등산에서 우리모두 희망과 용기를 배워갔으면 한다.

/이 태 옥  농촌을 사랑하는 영광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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