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장쯔이의 ‘숨막히도록 화사한 아름다움’
[연인] 장쯔이의 ‘숨막히도록 화사한 아름다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4.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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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말에 중국 장예모 감독의 무협영화 [영웅]을 이야기하였다. 이 영화이야기를 하려고 다시 찾아 읽어보았다. 이 영화는 어찌 보면 [영웅]이야기에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뺄 것도 없었다. 굳이 다른 걸 찾는다면, 시대배경이 진시황 시절과 당나라 시절, 장쯔이가 초라한 조연이었는데 이번엔 핵심주연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색채의 마술사’ 장예모 감독이 이 영화에서 그려내는 장쯔이의 ‘숨막히도록 화사한 아름다움’을 흘려 보내버리고 싶지 않다.

▲ ⓒ연인2004 [영웅]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 ... 장예모 감독의 작품에서 항상 느끼는 불만이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였다. 장예모 작품을 보면 꼭 임권택 감독이 떠오른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영상미에서 오는 이질감. 관객에게 뭔가를 교훈으로 굳이 말하고 싶어하는 고지식함. 정성들인 영상미 사이사이에 빵꾸난 틈새를 메우지 못하는 미숙함.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시나리오가 항상 허술하다는 점도 참 닮았다. ... 탐미적 미감의 극치를 내달려 우리 산천에 처연한 아름다움을 담아내려는 정일성 촬영감독처럼, 탐미적 색감의 극치를 내달려 중국 산천을 선연한 아름다움으로 찬양하려는 '지존적인 중화주의'를 꿈꾸는 것 같다. 그는 [붉은 수수밭]에서 중국 여인의 서러운 시집살이도 선연하게 붉은 색감으로 아름답게 감싸 안았고, [국두]에서 옷감집의 착취노동과 성폭력도 샛노랗게 물들인 비단폭에 휘감아 안았으며, [홍등]에서 첩살이의 숨막히는 갈등과 죽음도 검회색 높은 담장에 걸린 붉은 등불의 선연한 색감으로 숨죽이게 만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그의 미감과 크게 어긋나지 않은 소재이어선지, 그나마 가장 편안하고 훈훈하였다. 그는 이번에도 자객들의 숨어살며 옥죄어 드는 숨막힘도 탐미적 색감과 유장한 붓글씨 그리고 환상적인 풍광에 감추어 버렸다. "영화 보는 사람이 돈 내고 즐기면 그만이지, 괜히 머리 아프게 꼬치꼬치 파고들 게 무에냐!"라고 힐책하면, "나도 그렇다!"고 맞장구 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영상미와 색감을 즐기는 팬으로서, 다음 영화쯤에서는 그의 역량이 한 차원 승화된 모습을 보고 싶다는 바램을 가져 본다. 그의 영화가 심심풀이 껌이나 땅콩하고 격조가 다른 바에야... .” ▲ ⓒ연인2004
이 영화에서도 그 ‘한 차원 승화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영웅]보다 못해 보였다. 주연이나 조연의 연기가 굳어 있다. 남녀의 애정장면이 어찌나 어줍쟎고 치졸한지, 저 멀리 아련한 풍광에 눈을 돌려버렸다. 마지막 30여분은 그 화사한 아름다움이 지쳐가는 가을숲을 짓이기며 영화를 통째로 죽여갔다. 화사한 색감 ` 황홀한 미감 ` 강렬한 액션으로 정성스레 마련한 차림새를 어떻게 저리 어처구니없이 망쳐 버릴 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적어도 마지막 10여분은 없어야 했다. 임권택과 장예모. 어쩌면 이리도 닮았을까? 아주 비슷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 아주 비슷한 시대상을 부딪혀 살면서, 스스로는 보아내지 못하는 어떤 ‘숙명적인 고갱이’를 갖게 되는 모양이다. 그 시대의 수많은 군상들을 한 곳에 모두고 모두어서 엑기스로 짜내 보여주는 ‘천연기념물’? 파고들어 살펴볼 만한 소재인 것 같다. 다른 세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고갱이가 뭉쳐서 ‘나의 시대상’을 어떤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을까?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기막힌 맛’을 눈감아 버릴 수는 없다. 이런 저런 재미가 상당하지만, 장쯔이의 ‘숨이 컥 막히도록 화사한 아름다움’이 단연 돋보인다. 그녀의 전공이 ‘발레’라고 들었다. 그녀의 액션에서 발레에 묵은 흔적이 보였지만, 중국 무술에서는 오히려 설익은 동작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게 오히려 퓨전의 묘미를 주면서 화사하고 유려한 옷자락과 춤사위에 촉촉이 녹아들어 훨씬 강렬한 환상을 황홀하게 자아냈다. 장쯔이는 앞으로도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겠다”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 ⓒ연인2004
우연이지만, 나는 장쯔이가 나오는 영화는 [조폭마누라2]말고는 다 본 것 같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가을 단풍이 샛노랗게 물든 집으로 가는 길목에 아스라이 기다리며 그리고 초라하고 허술한 시골집 부엌문에 수줍게 기대어, 포동포동한 얼굴에 질박한 웃음을 빙그레 피워 올리는 모습이 한가롭게 평온하면서도 깜찍하게 예뻤다. 그런데 나머지 영화에선 깡마르고 다부진 모습이다. 표정이나 액션에 허전한 구석이 많고 인공적인 억지가 느껴졌다. 실망했다. 이번에도 그 깜찍하게 예쁜 모습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의 춤추는 장면은 ‘화사한 아름다움의 극캄를 빈틈없이 담아서 나를 숨막히게 압도하였다. 금성무와 유덕화라는 강렬한 남자 주인공마저도 몇 걸음 뒤로 물러선 조연으로 보일 정도이다. 한 마디로 “장쯔이를 위한, 장쯔이에 의한 장쯔이만의” 영화이다. 위에서 임권택 장예모 어쩌고 저쩌고, 이게 저렇고 저게 이렇다며 꼬장꼬장 따져 말했지만, 그리고 이 영화에서 다른 볼거리도 또 많지만, 그녀의 춤추는 장면 하나로 나머지 모든 걸 묻어버릴 수 있다.

이리도 지극하게 화사한 아름다움이 또 있을까 둘러 보았는데, 디즈니 만화영화 [환타지아]에서 ‘비발디의 사계절’ 장면 그리고 워너 브라더즈 만화영화 [아나스타샤]의 궁전무도회 장면이 여기에 버금갈까? 여러분! 장쯔이가 ‘화사한 모란꽃’처럼 찬란하게 피어나는 그 황홀한 장면을 놓치지 마십시오.(제 진짜 속마음은 저 말고는 암도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화면이 큰 영화관을 일부러 골라서 보셔야 합니다. 비디오로 보시면 안 될 영화입니다.(제가 알기로는 밀레오레극장이 광주극장 다음으로 크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 영 주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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