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냉전의 낡은 외투 벗어야"
"국보법 냉전의 낡은 외투 벗어야"
  • 이광재 기자
  • 승인 2004.09.11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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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 광주 기자회견

"북측 경제교류에도 보안법 방해돼"
"원로들 과거 잣대로 현실 재단 말아야"

국가보안법 존폐여부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설전이 광주에서도 이어졌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10일 오후 광주시 상무지구 센트럴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을 폐기하고 특별법이나 형법 강화로 당론을 정했다"면서 "20세기 낡은 유물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민족에게 21세기는 없다"며 국보법 폐기 입장을 강조했다.

▲ 이부영 의장은 "왜 한국에는 헬무트 콜 같은 보수정치인이 없는가?"라며 야당의 각성을 촉구했다. ⓒ안형수 기자 이의장은 또한 "현재 기업인들이 동북아의 주도권을 위해 북한과의 경제교류에 노력하고 있으나 북한과의 사소한 접촉조차 처벌해야 하는 국가보안법이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며 경제적 측면의 국보법 폐기 논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이의장은 이어 "국가보안법 폐지는 세계의 염원"이라며 "이는 일제 식민지와 동족산잔의 폐허를 딛고, 세계 12대 무역강국, IT강국으로 발돋움한 자신감을 가지고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중심국가로 전진하기 위한 미래비전"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의 이날 기자회견은 하루 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국보법을 지키는 데 모든 것을 걸겠다"고 밝힌데 대한 반박 성격으로, 당차원의 국보법 폐지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때문에 이 의장은 한나라당을 겨냥해 "시대착오적 사생결단식 자세는 나라발전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자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박대표가 우리당의 국보법폐기 당론을 '안보의 무장해제'라고한 발언에 대해서도 "야당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무작정 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선동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당은 9월말까지 국민토론회등 다양한 의견수렴을 통해 국보법 폐지에 이어 형법강화로 할 것인지 특별법을 제정할 것인지 결정할 예정이이다. 기자회견에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이의장은 '우리의 국보법 폐지에 대한 북측의 상호주의적 대응'과 관련해 "북에도 대남적화통일을 규정한 노동당 규약이 있지만 아직까지 그걸 바꿀 의향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하지만 남북간의 경쟁은 양측의 커다란 국력차이가 나고 있고, 이제는 화해와 교류협력의 시대이기에 남측의 국보법 폐기는 북측에 상응된 조치를 요구할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자회견에 앞서 5.18역을 참배했다"면서 "국보법 유지를 주장하면서 5.18묘역을 참배하는 것은 양심을 속이는 일"이라고 말해 최근 5.18묘지를 대거 방문했음에도 국보법 사수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이중적 태도을 겨냥했다. ▲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강기정 의원(광주북갑)은 "박근혜 대표는 과거사 청산에 당직을 걸어라"고 요구하기도. ⓒ안형수 기자
이의장은 또 최근 사회원로들의 국보법 사수 발언에 대해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그분들의 역사적 공로는 인정하나, 현역에서 활동하던 시대의 잣대로 오늘 시대를 재단 말아야 한다"고 정중히 자제를 요청했다. 이어 독일 보수적인 기민당 정객이면서도 진보적 색체의 사민당의 정책을 성공적 결론으로 이끌어 독일통일을 이룬 헬무트 콜 전 서독 수상의 사례를 들면서 "왜 우리나라에는 서독의 콜 수상과 같은 사람이 나올수 없는가"라고 되물었다.

한편, 기자회견 마지막에 마이크를 넘겨받은 강기정 의원(광주 북갑)은 "박대표는 국보법 사수에 모든 것을 걸게 아니라 과거청산에 대표직을 걸어야 한다"며 이의장을 거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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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나르기 2004-09-16 10: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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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李富榮) 선생에게

글쓴이 우 진

존경하는 이부영 선생 !

뒤늦게나마 선생의 열린우리당 당의장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이 축하 메시지 속에는 선생의 그 험난한 인생역정을 조금은 알고 있는 한 우생(愚生)의 옛 우정을 잊지 못하는 두가지 ‘뜻’이 담겨 있소이다.

하나는 기왕에 정치인으로 나섰으니 이제 ‘일봉지하’(一峰之下)의 차석에 오른 이상, 마지막 남은 최정상까지의 등정을 기약하며 선생 자신과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선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큰 일을 해 내시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격려의 뜻이지요. 또 하나는 오복(五福)의 제일이라는 장수(長壽)까지 누리게 생겼음을 일러 드리고 싶은 ‘환기’(喚起)의 뜻이외다.

느닷없이 웬 장수타령이냐고 잠시 의아해 하실테지만 명민(明敏)하신 선생이니 나의 어리석은 속뜻을 이내 알아 차리실 터, 비록 듣기 거북한 소리가 나오더라도 과히 섭섭해 마시고 끝까지 경청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 “두 얼굴의 사나이”

보도된 바로는 선생의 당의장 취임 제일성이 “박정희 프락치 운운…”이었던 것 같소. 이에대한 세상의 반응이 얼마나 험악했던가는 선생이 오히려 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소이다.

집권세력 최대의 혐오-증오 대상인《조선일보》는 “——李富榮 의장의 두 얼굴” 이라는 <사설>(2004. 8. 21.)에서 1997년 이래 선생이 6년동안 한나라당에 머물면서 국회 진출은 물론 원내총무-부총재-공천심사위원 등 요직을 두루 맡았을 뿐만 아니라 두차례 대선을 치루는 과정에서 전국을 돌며 한나라당 후보를 뽑아달라고 호소했던 사실을 적시하였습니다. 이어 <과거사 조사>에 다른 사람도 아닌 선생이 앞장서는 것은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한나라당이 가해세력이고 청산대상이라고 말한다면, 스스로 그 ‘가해세력’과 함께 뒹굴면서 ‘피해세력’을 자처하는 지금의 여권을 비난해온 6년의 세월은 도대체 무슨 말로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비꼬았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 비판은 정곡을 찔렀다고 할 것입니다. 확실히《조선》‘사설’의 제목처럼 선생은 꼼짝없이 “두 얼굴의 사나이”임을 시인할 수 밖에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반노’-‘반열린우리당’ 진영이나 시중의 험구가(險口家)들은 말할 것도 없고, 평소 말이 없던 보통사람들… 특히 중도성향의 지식인사회에서 조차 내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욕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내가 선생에게 “장수하게 생겼다”는 반어(反語)적인 표현을 쓴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 속언(俗諺)에 “욕 많이 먹으면 장수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 그러면서도 또 이 심술궂은 속언 작자들은 “수즉욕야”(壽則辱也)라 ——“오래 살면 욕”이라는 그 다음 말까지 준비해 놓고 있소이다.

큰 정치를 하자면 그까짓 참새 떼들의 자잘한 욕설쯤이야 뭐 그리 대수이겠소. 어짜피 시간이 가면 다 잊혀질 일인데….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선생이 당을 다시 바꾼 최근 까지도 선생 나름대로 깊은 뜻이 있어 그리 했을 것으로 믿고 싶었소이다. 오로지 국가와 민족의 구원한 미래를 위해서 뭔가 그 쪽에 가서 꼭 하지 않으면 안 될 긴요한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는 선의의 해석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막상 선생의 취임 제일성을 들으니 그게 아니라는데 실망을 넘어 강한 배신감부터 들더이다. “천하의 이부영” 쯤 되는 사람이, 국가의 앞길을 널리 열고 환히 밝혀나갈 궁리는 커녕, “과거사 청산”을 빌미로 “386 세대”로 대표되는 집권세력의 나라 ‘분탕질’에 앞장을 서다니….선생의 인물됨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되는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이부영 선생!

이나라에 “인간 박정희”의 전력과 그의 사상적 편력을 모를 사람이 누가 있겠소이까!
“박정희의 과거사” 문제는 5.16 후 민정이양을 놓고 겨룬 1963년 10월 대선에서 이미 크게 불거진 것입니다. 당시 야댱후보 윤보선(尹譜善) 선생이 박정희 후보에 대해서 그 유명한 <사상논쟁>을 제기하며 전력(前歷) 시비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그 때 검증이 끝난 것입니다. 일제하에서 젊은 날에 지은 허물과 그 직후 행적의 ‘사상적 의혹’은 그가 대선에 승리함으로써 자동적으로 국민적 사면이 내려진 것입니다. 또 5.16 이후의 공-과(功過)는 연구대상으로서 아직도 경리가 끝나지 않았다고 할 것입니다. 다만 과(過)에 대한 죄업은 그가 총탄을 맞는 순간, 영구히 역사의 갈피속으로 사라짐으로써 깨끗이 씻고도 남음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나 그 육신은 백골 마져 진토가 다 되어가는 지금, 새삼 그의 영혼을 불러내어 욕보이고 난도질 치려 하다니… 요즘 말로 그 “자학(自虐)의 굿판”을 벌여 선생이 얻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구원자”와 “배신자” 사이

옛부터 “입은 비뚜러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소이다. 지금 선생과 선생진영 사람들은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멸망과 일제지배 36년간 민족이 당한 고통과 그 혹독한 노예적 삶에 대한 책임을 일개 관동군 초급장교 다카키(高木正雄 : 박정희) 중위에게 모조리 씌우고 추궁하는 꼴입니다. 20대의 아직 애송이에 불과한 그 “반역자 다카키”가 그때 민족 전체의 명운을 혼자 좌지우지하고 있었다는 말인지 뭔지…. 아니면 그 시절 이땅엔 박정희 말고는 허수아비들만 살았다는 소리인지…. 나는 선생부터 한번쯤 자신의 논리가 어떻게 비약하고 귀착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고 권고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쯤되면 “역사 바로세우기”라고 강변하는 그 숭고(?)한 <과거사 청산> 작업이 영역권 확보를 위해서 날뛰는 시중 폭력배들의 무도한 만행과 잡스런 행패와 질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참으로 모를 일이외다.

게다가 선생의 “프락치 총책 운운…”하는 논리도 그렇소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신생대한민국 군 창설기에 공산당은 수많은 프락치들을 군내에 침투시켜 국군을 와해시키고 “붉은 군대”(赤軍)로 만들어 반란을 일으키도록 갖은 공작을 다 하였습니다. 당시 “박정희 소령”이 붉은무리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켜 군 내부의 공산분자를 그대로 숨겨주었다면 결과가 어찌 되었겠습니까? 국군은 그들의 공작에 의해 풍비박산 났을 것이고, 6.25의 그날 김일성은 서울에 무혈입성하여 대한민국을 일거에 접수, 이른바 “남조선 해방”이 그 때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강토는 붉게 물들여 지고, 전국민은 “김일성 민족”이 되고, 전민족은 “어버이 수령의 무한히 충직한 혁명전사”가 되어 지금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쪽박차고 거지 꼴을 하고 있겠지요.

김일성집단의 전면 남침에 국군이 그나마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열(五列)의 준동을 중도에 봉쇄하고, 숙군(肅軍)의 대오를 정비하도록 이끌어 준 박정희의 결정적 제보(선생 진영에선 밀고라고 우기지만…) 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프락치 운운…”하는 선생 이하 그쪽 사람들의 ‘박정희 매도’야 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데 박정희가 결정적으로 공헌했다는 사실을 열심히 증언하고 있는 꼴이니 이 어찌 우습다 하지 않을 수 있소이까!

“박정희 소령”이 구국의 “의인”(義人)인가, 비인간적인 “배신자”인가, …감사와 칭송의 대상인가, 공격과 매도의 대상인가…하는 평가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두갈래의 시각, 두개의 ‘세계관’이 그 분기점이요, 귀착점이라고 할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박정희를 그토록 지독하게 타매(唾罵)하는 선생의 진의란 “배신자 박정희”의 인간적 추악성과 부도덕성을 부각시켜 그의 모든 행업을 부정하자는데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선생이 그러면 그럴수록 그 주장은 박정희의 <배신-밀고>가 전민족의 “쪽박차는 일”을 다 망쳐 놓았으니 그게 안타깝고 억울하고 괘씸하다는 논리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 것이고, 결국은 “인간 이부영” 자신의 사상적 지향이 어느 쪽인가를 여지없이 드러 낼 뿐이라는 것입니다. 선생 만큼 식견 높고 사리가 분명한 분이 이정도의 논리적 귀결을 모를리 없을 터인데 벌써 망녕이 나신 것은 아닐테고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3. ‘어른’이 없는 정권

사실 나는 선생 앞에서 박정희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사람이외다. 참으로 고난과 신산(辛酸)의 세월을 살아오시며 한때는 이나라 민주화 운동의 대명사와 같았던 선생의 그 거룩한 희생적인 삶에 비하면 내 하찮은 인생은 용훼(容喙)조차 부끄럽다 할 것이나, 이사람 역시 그 엄혹한 유신시절에 해직의 아픔을 겪고 박정희를 원망하고 저주하는 군상(群像)의 한자락을 차지했던 사람이니 어찌 선생의 맺힌 한과 결코 가셔지지 않는 분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소이까!

그러나 아무리 박정희에 대한 미움이 하늘 끝까지 사무친다고 하더라도 선생이 정녕 대인(大人)이라면, “역사 바로세우기”와 같은 거창한 과업을 당장 눈앞의 정적에게 타격을 가하여 “불수”(不隨)로 만드는데 악용하려는 따위의 그런 속뵈는 짓에 소인 잡배들처럼 함부로 날뛸 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꼭 선생이 아니라도 앞장 설 사람은 많을 터이요, 철들려면 한참 모자라는 “386세대…젊은 그 애들”이나 할 짓이지 어디 선생같은 어른에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선생의 박정희 매도발언 보도를 접하는 순간,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하늘에다 대고 주먹질하는 ‘이부영 패러디’가 나의 뇌리를 스친것도 그 때문인 듯 하오이다.

기왕 내친 김에 그동안 마음 속으로만 쟁여 두려 했던 얘기까지 다 꺼내 보려 합니다.
이 정권의 치명적 결함은 무엇보다 ‘어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벌이는 정치마당은 심성 고약한 문제아들 ——외골수의 후레자식들, 우국지사연 하며 시민단체 간판이나 들고 다니는 소인배들, 지휘봉 따라 촛불들고 광장을 물결치는 홍위병 같은 “뇌동(雷同)의 무리”들이 펼치는 광란의 ‘막춤’ 판이 아닌가 싶소이다.

한 집안에도 어른이 계시면 분위기부터 달라지는 법 아니겠소? 오가는 말투와 그 억양이 달라지고, 식구들 모두가 매사에 삼가하고 조신(操身)하며 진지하면서도 늘 화락(和樂)한 것은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고 넘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어른이 있기 때문이지요. 집단이나 정권도 마찬가지이고, 한 나라의 존립 원리도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선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이나라의 진정한 어른인가부터 생각해 봅시다. 선생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는 “대통령 노무현”은 이제 막 ‘사회사상’(社會思想)에 눈을 뜬 대학 초년생의 어설픈 사회구원의식 단계를 크게 넘지 못하는 수준인것 같소이다.

이같은 비평이 일국의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님은 물론, 대단히 불경스럽고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지나친 혹평이 됨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게 다 누구 탓이겠소? 그것은 코드가 맞느냐 안 맞느냐의 차원도 아니고, 일 개인에 대한 사적(私的) 호-불호의 차원도 아닌, 순전히 대통령 자신의 ‘입초사’에서 비롯되고 거기에 근거한 비평인데 낸들 어찌 하겠소.

좀 더 톤을 높혀 봅시다. 미안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한총련>과 그 전신인 <전대협> 정도와 궁합이 어울리고 죽이 잘 맞아 떨어질 그런 수준의 위인이라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대통령에 취임하기가 무섭게 정신적 미숙아들의 “가출 집단”, 아니면 “김정일 장학생 서클”이라고나 해야 할 <한총련>의 합법화 문제부터 들고 나왔겠습니까. 이같은 몇가지 전형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작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 방문길에 자신은 한국에서 공산당을 합법화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취지의 말을 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의 척도를 “공산당의 합법화 여부”에서 찾는듯한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이어 7월의 중국 방문에서는 모택동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습니다. 얼핏 들으면 원론에 충실하고 신념에 투철한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순수한 마음’의 무의식적 발로 같기에 크게 흠잡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류의 소신 피력은 지적담론(知的談論)이 어울리는 젊은 날의 대학 동아리들의 모임이나 취흥이 도도한 주석에서 흉허물 없는 친구간, 또는 선-후배들 사이에서나 조용히 오갈 성질일 것입니다. 그런데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더구나 북한과 휴전상태에서 무력대치 중인 남한의 대통령이, 그것도 구원(舊怨)이 겹겹이 얽힌 남의 나라에 가서 외교마당의 연장선상에서 떠들 수 있는 소리인지…사실 그 정신상태를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의로만 보면 대통령이 그만큼 솔직 담백하고 아직 순수성을 잃지 않은 고매한 성품 탓이라고 두둔할 사람도 있을지는 모르겠으되, 냉정히 따져보면 한마디로 구상유취(口尙乳臭)의 지경에서 천지분간이 잘 안 되는 상태임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이를 두고 외교적 수사(修辭)에 능한 외국인들은 “대통령 노무현의 이상주의”라고 점잖게 풀이해 주는 모양이지만 실은 뒷전에서 “설익은 풋내기”라고 비웃는 소리도 들린다고 하오이다.


4. ‘평등가치’는 인류 구원의 이상…그러나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좌익들이 했다는 독립운동 재평가와 「국가보안법」존폐문제에 관련된 일련의 언급들입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그의 발언들은 어쩌면 저렇듯 <한총련>의 의식행태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 하냐는 것이외다. 이럴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안중에 국민은 없고, 오로지 <한총련>만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져 들더이다.

“…문화” 라든가 “…전선”(戰線) 따위의 독립명사를 어미로 부쳐 ‘합성어’ 만들기를 좋아하는 언어취향으로 미루어 “대통령 노무현”의 심리적 장애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대학 컴풀렉스’ —―곧 지적(知的) 컴풀렉스가 바로 그것입니다. 대학에서 조차도 이미 벌레취급 당한지 오랜 <한총련>을 그토록 싸고 도는 심리기제(機制)야 말로 그의 심층심리를 지배하고 있는 ‘대학 컴풀렉스’의 뒤집힌 표현이 아닌가도 생각해 봅니다. '칼리지 라이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인문(人文)정신의 빈곤”이 또한 ‘레드 지향’(Red farer)의 “이념 컴플렉스”를 낳았다는 풀이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 컴풀렉스가 ‘공격성’으로 나타난다고 함은 심리학 입문의 초보 상식이 아닙니까! 노정권의 부정적-가학(加虐)적 ‘서울대관’이 그 좋은 보기가 아닐까 합니다.

돌이켜 보면,『공산당 선언』의 충격에 사로잡혀 이 사회의 존재방식과 세계의 모순구조에 분노하고 절망하며 마르크시즘에 맹목 침잠하던 꿈 많은 젊은시절의 지적 모험은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찾아오는 사상적 열풍시대의 성숙과정이라 할 것입니다. 역사, 민족, 계급, 혁명 그리고 그 민주, 민중 속에 보석처럼 꼬옥 박힌 평등가치, 이 얼마나 젊은 피를 끓게 하는 매력적인 인식 대상입니까! 김일성「주체사상」에의 감염-매몰 경로도 대체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야 말로 진리요 과학이며 인류구원의 유일한 대안으로 통하던 시대부터 개인차는 있겠으나, 아무리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경도-심취 했다가도 연륜이 쌓이면 그것이 한낱 관념이요 허구에 불과함을 스스로 깨닫고 미련없이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 정상인들의 공식처럼 되어 있는 사상편력임은 여기에 거론조차 진부한 얘기일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은 소-동구 제국이 70여년에 걸친 사회주의 건설-실험의 실패를 자인하고 자멸함으로써 스스로 공산주의의 ‘사망신고’를 낸 지도 자그만치 15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입니다. 정상인치고 공산주의란 도저히 인성(人性)과 천리(天理)에 맞지 않는 인류사의 일대 재앙이요, 몸서리쳐지는 악몽임을 부인할 사람은 이제 없을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듯 바뀌었는데도 북한의 김정일 집단과 이나라의 집권세력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오로지 일편단심, 마르크스주의적 환상에 사로잡혀 한치도 물러서려 하지 않고 버티고 있으니 어찌 이들을 정신이 온전한 집단이라 할 것입니까!

더구나 <한총련>을 비롯한 친북-반미세력은 김일성식 <주체사상>의 변태에 불과한 소위 “민족-해방”(NL)이니 “민중-민주”(PD)니 하는 시대착오적 의식을 척도로 아직도 이 세상을 재단하고, 이나라를 그 실험대상으로 삼고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잣대로 하여 우리 사회를 개조하겠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과거사 청산→ 지배세력의 교체→ 천도(遷都)→ 국보법폐지→ 빈곤의 평등→ 김일성식 연방제통일로의 이행이야말로 진보의 탈을 쓴 이론광신 집단, 곧 오늘의 집권세력이 이 나라를 끌고 가고자 하는 기본 방향이요 그들이 추구하는 이나라의 미래의 모습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은 이제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진정한 “수구 꼴통”인가는 저절로 판명이 난 것입니다. 선생은 결코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들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마구 휘들러 대는 바로 그 “수구 꼴통”이라는 ‘매도의 비수’(匕首)는 그들 자신에게 돌아가야 마땅한 것입니다. 진실로 청산되어야 할 민족의 공적(公敵) 제1호는 바로 그들이란 말입니다.

이부영 선생!

반드시 마르크스적 평등주의가 아니더라도 “평등가치”는 결코 포기될 수 없는 인류 구원의 이상이라는 데는 나역시 수긍합니다. 그러나 도식화된 기계적 평등, 곧 “인간의 얼굴”을 상실한 강요된 맹목적 평등이 인간의 자기실현에 정면 배치-충돌하는 질곡임이 실증된 이상, 이념적 환상에 오불관언(吾不關焉) 집착함은 자기기만이요, 죄악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안타깝고 걱정스런운 것은 이나라의 가장 윗 어른이라는 대통령이 자그만치 수천만명의 고귀한 인명 희생과 70년 세월이라는 기나긴 고통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루고 나서 마침내 용도폐기된 그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이데아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5. 누가 “시대를 거꾸로 산 자들”인가?

“반민특위의 역사를 읽은 많은 젊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불이 붙거나 피가 거꾸로 도는 경험을 다 한번씩 한다. …여전히 그 시대를 거꾸로 살아온 분들이 득세하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냉소하고 이 역사가 계속되는 한 우리 한국사회에 미래가 없다. 3만달러시대로 …가면 뭐하나 …오로지 자신의 보신만을 앞세워서 재주껏 살아온 사람들로 채워진 국가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경제를 핑계대서 국가적인 사업, 역사적인 사업들을 회피해 가려는 기도가 용납돼서는 안된다. 반민특위사건 때도…경제, 안전, 혼란 …이런 명분을 내세워 엎어버리지 않았나.” (《조선일보》8월 26일자)

이상은 노무현 대통령이 독립유공자들과 가진 청와대 오찬석상에서 좌파독립운동의 공식 인정을 시사하며 행한 발언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 문면만 보면, 참으로 정의감에 불타는 “대통령 노무현”의 발상이 ‘신선한 충격’으로 가슴에 와 닿는 듯, 지당 또 지당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걸음만 물러나서 씹어보면 순진한 젊은이들의 잠자는 문제의식을 자극하고 선동하는데는 기가막히게 적중했을지 몰라도 국가를 경영하는 한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할 소리는 못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착각하고 있는 몇가지 사실을 지적하면,

첫째로 그는 책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대학 강단의 교수나 대중집회의 연사 쯤으로 자신의 직책과 신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인간사회를 고도로 증류된 맹물이나 진공상태로 착각한 나머지 사물을 지나치게 단순화-도식화 시켜 이해하는 단세포적 사고의 ‘우’를 범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세상이 그리도 단순한 것이라면 어려울 일이 무엇이 있겠으며 싸울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치란 온갖 잡균, 온갖 이물질, 온갖 불순물이 우글거리며 병리적 상승작용을 일으켜 악취로 가득찬 이 세상을 정화하는 노력의 총체적인 표현일진대, 그 어떤 문제도 일도양단(一刀兩斷) 단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기본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한, 그는 무슨 소리를 하든 기준미달이라는 비판과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셋째로 친일청산과 관련, “시대를 거꾸로 살아온 분들이 득세하고…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냉소한다…”는 대통령의 일갈(一喝)은 일면 진실을 담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상사회 건설이라는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일제하에서는 좌익운동으로 민족독립운동을 분열시키고, 광복 후에는 시종일관 대한민국의 국체를 부정하고 이나라의 전진를 끊임없이 방해-위협하며 이적행위나 일삼아 온 좌익-친북세력도 친일세력 못지않게 “시대를 거꾸로 살아온 사람들”임이 분명합니다.

즉, 종주국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세계의 자멸이 사회주의 이상사회 건설의 완전 허구성을 실증하는 것일진대, 그동안 이땅의 좌익분자들은 실현불가능한 그 환상을 좇기위해 세상을 그토록 어지럽히고 무고한 사람들까지 괴롭히며 희생시켜 왔으니 시대를 거꾸로 살기로 말한다면 이보다 더 한 자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아무리 낯 두꺼운 좌익-친북세력일지라도 이 사실까지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그 좌익-친북세력이 득세 하여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기만하고 우롱하고 “수구꼴통”이라고 야유하고 있으니 이 역류하는 ‘시대적 진실’을 의도적으로 망각-외면-부정하고 있는 “대통령 노무현”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대통령 노무현”의 사상적 기조는 레닌이 지적한 바 “소아병적 이상주의”의 유치단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 그에게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바로 자기 사고체계의 한계를 통절히 깨닫고 반성하며 뒤늦게나마 귀를 널리 열어, 자신이 이미 망가뜨린 대한민국 –—우리의 이 운명공동체를 수성(守成)의 정상궤도로 되돌려 놓기위해 남은 임기동안 무한히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중용』(中庸)에, “공자가 말하기를 순(舜)임금이 지혜의 대인인 것은 그가 남에게 묻기를 좋아하고, 그 남의 말에 따라 살피기 좋아하며, 사람들의 그릇된(악한…) 부분은 감싸주고 훌륭한(선한…) 점은 드러내어 상극적인 양단 모두를 잡되 그 중도로써 백성을 위한 정치에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일절이 나옵니다. 나는 이 가르침이 공교롭게도 노무현 대통령 —–바로 그를 두고 이른 채찍의 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무엇보다 겸손의 미덕부터 배워야 하겠습니다. (子曰 舜其大知也與 舜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斯以爲舜乎)


6. ‘최고강령’과 ‘최저강령’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모택동을 존경한다니 모(毛)의 말을 빌려 다시 충고 한마디를 보내고자 합니다. 선생도 한번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2차대전중 모택동은 극단으로 흐르기 쉬운 공산주의자들의 극열 행동을 경계하면서, “공산당에는 최고강령과 최저강령이 있다. 최고강령은 급진적인 먼 장래의 원대한 사회주의 계획이다. 최저강령은 현시점에 맞는, 때에 따라서는 비공산주의적이고 현실적인 강령이다. 최고강령(이상)만 따르면 좌익 모험주의가 된다. 최저강령(현실)만 따르면 우익기회주의가 된다. 이 둘을 겸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다….”하고 가르친바 있습니다.

요컨대 혁명은 직선으로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우회(迂廻)도 있고, 강경-급진 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온건-완만도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교조적 맹동(盲動)주의의 과오를 비판하고 유연성 있는 ‘현실적응’을 강조한 것입니다. 모택동의 이 어법대로라면 “대통령 노무현”이 지금 막무가내로 밀어 부치고 있는 이른바 ‘개혁 드라이브’ –—<과거사 청산>→「국보법」폐지→서울포기ㆍ‘천도’는 “극좌적 모험주의”의 과오에 빠져 이나라를 벼랑끝으로 몰고가는 “ 망동”(妄動)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모택동은 한때 중국사람들로 부터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를 집대성한 거대한 인물로 추앙된바 있습니다. 모택동이 결코 현실과 유리된 꿈을 좇는 –—한 갓 이상주의적-낭만주의자, 또는 몽상적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융통자재의 냉철한 현실주의적 실리주의자였다고 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진실로 “대통령 노무현”이 모택동을 존경한다면 모(毛)의 ‘현실주의’로부터 뭔가 크게 배운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모험주의적 맹동으로 저돌하는 ‘노무현 정치’행태의 그 고집불통으로 미루어 보면, 그는 <모택동 사상>의 ‘독재주의’라는 일면만을 닮으려 했지, 그 이면에 내재하는 ‘현실주의’로부터는 그 어떤 교훈도 얻으려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택동 사상>에 나타나는 ‘인민’-‘민주’-‘민족’-‘연합’-‘공존’ 따위의 구호들은 2중~3중적 독재주의의 변증법으로 위장된 언어마술입니다. 모택동은 일찌기「신민주주의론」을 제창하던 장정(長征)시기부터 “인민들 사이에만 동지적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인민이 아닌자에게는 적대적 독재를 실시한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인민’의 개념을 가변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모택동식 ‘독재주의’는 민족의 개념조차도 얼마든지 신축자재로 변경-축소할 수 있는 투쟁적 개념으로 썼던 것입니다.

‘노무현 정치’의 표본으로 지적되고 있는 좌와 우, 그들과 우리, 개혁과 반개혁, 진보와 보수 등의 편가르기야 말로 <인민 대 비인민>으로 적대적 2분을 시도한 모택동식 독재주의의 전형인 것입니다. “대통령 노무현”이 모험주의의 무모를 현실로 끌어내려 타협과 조정으로 후퇴할 줄도 아는 모택동의 현실주의를 모른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나 이나라를 위해서나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쯤되면 ‘핵주먹’이라는 미국의 흑인 복서 타이슨이 성추행사건으로 감옥을 드나들면서 모택동을 존경하게되었다는 그 희화(戱畵)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 이부영 선생!

넋두리처럼 장황해진 사설(辭說)쪼의 이 기나긴 설교도 어느듯 종국에 다달았소이다. 이제 선생에게 이 서신을 띄우는 목적을 대충 마무리 지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선생에게 묻겠소이다. 선생은 지금 그 당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 옛날 《사상계》 발행인 시절부터 공산당 비판에 추호도 인색하지 않았던 장준하(張俊河)선생…, 그토록 존경하여 마지 않으며 아버지처럼 받든다는 그분께서 오늘날 「국보법」폐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선생의 모습을 저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본다면 뭐라고 하시겠소이까?

이나라를 “문명국가”로 나아가도록 열심히 길을 닦고 있다고 칭찬하시겠소, 아니면 ‘박물관’의 용도가 언제부터「국보법」폐기장으로 바뀌었느냐고 반문하시겠소?

또 항상 이상과 정의를 추구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현실주의자였던 장준하 선생이 “대통령 노무현”의 극좌적 모험주의노선을 지켜보면서 마치 물가에 내 놓은 어린애나, 불장난 하는 아이들 수중에 든 휘발성 물질처럼 노정권에 맡겨진 이나라의 위태롭기 짝이 없는 운명에 얼마나 애를 태우며 걱정하고 계실 것입니까!

노정권에게 어른이 절실히 요구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듯 환-진갑 다 지나 연륜으로 보나 민주화 운동의 경력으로 보나 그쪽 당에서 진정한 어른 노릇 할 수 있는 최적임자는 선생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헌재의 재판이건, 대법원 판결이건, 또 원노들의 고언(苦言)이건, 자기들 생각과 다르면 모조리 “시대착오”요, “기득권 세력에 기생하여 영화를 누리던 반개혁-반민주적 수구세력”이라며, “민족문제와 분단에 대해서 고민 한번 해 본 일 없이 한평생 기득권에 취해 살아 온 사람들”로 몰아붙이는 풍토에서 선생이 어른노릇을 하면 얼마나 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닌 “역사 구부리기” 청부업의 얼굴마담, —– 곧 시중에 흔히 나도는 왜 말로 “야도이 사장” 노릇이 고작이겠지요. 그것도 아니라면 “386” 새파란 아이들과 김일성-김정일 일가(一家)에 충성 경쟁하며 노가(盧哥)의 가신(家臣) 대열에 끼어 스타일 다 구기다 “팽”(烹) 당하고 마는 것이 예정된 수순이 아닌가 합니다.

이 선생! 나는 선생이 당적을 또 다시 바꾸는 저간의 변신을 보면서, 양심과 양식과 용기를 겸전한 이시대에 다시 만나기 어려운 한 고고(孤高)한 ‘지성의 몰락’을 예감하며 비감(悲感)에 잠겨 이 글을 맺습니다.

바람이 거세지면 풀잎같이 눕고, 날이 추워져 서리-성애 끼면 함께 굳어져 꺾이며, 물결치는 대로 살다가 조용히 떠나면 그만인 이순(耳順)의 나이…,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 존재로 그 향기로운 이름 기리 백세에 남기게 되었으면 족한 일이지 더 무슨 영화를 바랄게 있다고 젊은 애들과 짝짜궁이 되어 만고에 악취를 풍기려 하시는지(遺芳百世 遺臭萬年)… 더 볼썽 사나운 추태 보이기 전에 하루속히 그 진수렁 같은 “자학의 굿판”에서 빠져나오시오!! (完)

<추 기>........................................................................................................................ ‘선생’이란 호칭은 조선 후기 까지도 권위와 명예와 숭앙의 존재였던「산림」(山林) 정도에나 부칠 수 있었던 극존칭이었으나 근-현세로 오면서 집사-서기-마름에 이어 비서와 같은 보좌 인력에 까지 흔히 쓰일 정도로 그 격이 차츰 떨어지지 않았나 사료되는 바임.

관광객 2004-09-13 15: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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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설객(舌客)의 주장은 냉전이 지나 데탕트 시대가 왔으니
낡은 옷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논리를 펼치는 모양인데

이미 데탕트 시대도 지나
벌써 3년 전부터는 테러의 시대가 전개되는데
이에 맞는 우리시대의 새로운 갑옷과 방패는 무엇이어야 하는지가
없는 - 그냥 과거 다 없애버리기 논법이 되고 있을 뿐이다.

(테러의 시대에 데탕트라는 단어를 쓰는
너도 이젠 공부 안하는 촌스러운 정치꾼이 되었구나! 이런 못난 놈!)

노무현과 열우당, 이들은 정말로 과거 때려부수기만 잘하지
미래 설계 능력과 의지는 있는 인물들인가 ?

신상필벌에서 신상에는 인색하고 필벌에만 능한 경영능력이
반쪼가리 경영능력일 수밖에 없는 게 어디 정치판만 그러냐만서도...

과거의 공(功)은 다 무너뜨리고 과거의 과(過)만 드러내고 까발리는
그런 시끄러운 5 년으로 또 한 시대가 마감이 되겠구나 ...

하기야 언론도 세기적 테러시대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정도이니...
강건너 남의 집 불난 구경하듯하니 ... 산불구경 소식 전하듯 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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