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소설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번역...베트남전은 “제국주의의 더러운 전쟁”

▲ 김준태 시인

"나, 개미 한 마리도 안 죽였소이다!"
김준태 시인은 자신의 시 「베트남」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전에 청룡부대원으로 참전했던 그가 30년이 지난 뒤에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당시 그가 겪은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는 "시인으로서 살상을 하지 않았을 뿐,  참전 그 자체만으로도 '원죄'로 알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베트콩 1개 사단을 마주보는 베트남 북부지역 최전방에서 근무했다.

"지뢰가 너무 많아 차량은 엄두도 못 내고 모든 수송을 헬기로 해야 했어요. 베트남에 온지 사흘 만에 벙커에서 자던 동료가 지뢰를 밟아 죽어나가기도 했지요. 그들에게 늘 죄책감이 있습니다."

3년 전, 34년만에 베트남을 다시 찾아갔고,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 모임(www.forvietnam.or.kr)'에 고문으로 참가하고 있는 것도 그 같은 ‘과거’ 때문이란다.     

'원죄'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했을까. 그는 미국의 작가 팀 오브라이언이 쓴 베트남전쟁 소설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한얼미디어)'을 최근 한국어로 번역해 내놓았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생활도 한 저자 팀 오브라이언은 미국내에서 '베트남 전쟁의 초상화가'라 불릴 정도로 베트남 전쟁소설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며, 유명한 반전 소설가다. 그의 작품 『그들이...』 는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았으며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저자 역시 김 시인과 비슷한 시기 베트남전에 징집돼 1년간 전쟁의 야만성을 경험한 것이 주효했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평가였다. 

베트남에서의 같은 경험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두 작가를 원작자와 번역가로 엮어준 셈이다. 그러고보면 두 사람은 같은 시가 전쟁 참여뿐 아니라 기자생활을 했던 점, 그리고 작가라는 점 등 여러 부분에서 닮은 꼴이다.  

그런데 김준태 시인은 왜 지금시기에 '베트남 전쟁소설'을 골랐을까.
"8년 전 초빙강연 때문에 미국에 갔을 때 우연한 계기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당시 한국어판으로는 번역되지 않았는데, 표현만이 픽션일 뿐 이 책의 이야기엔 거짓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전쟁에 나가본 사람은 압니다."

깊은 공감과 함께 번역을 마음은 먹었지만, 올해 들어서야 본격작업에 들어갔다. 특히 국내에서 이라크파병에 대한 논란이 점점 크게 일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단다.

그는 번역작업을 하는 동안 자신과 함께 베트남에 갔다가 총에 맞고 지뢰를 밟아 죽은 사람들, 다리가 잘리고 부상당한 사람들, 자신도 죽을 뻔 했던 기억들이 죽음의 시체들과 함께 떠올라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이라크 파병도 베트남 교훈 상기해야

그는 자신의 번역서에 관한 직접적 얘기보다 현재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모든 전쟁의 부당성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할애했다. 결국 베트남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이나 '제국주의 국가가 벌이는 더러운 전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또한 과거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미국의 파병요청 명분은 ‘한미군사동맹’이었는데, 그 낡은 명분에 의해 쉬쉬하며 파병을 해야 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난 작가로서 전쟁의 현장을 봐버린 사람이예요. 전쟁은 어떻게 변명을 해도 명분이 없어요. 욕심꾸러기들이 자기가 더 먹기 위해 벌인 것에 불과하죠.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전쟁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길 빕니다."

김준태 시인은 1948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1969년 《시인》지로 나와 시집 《참깨를 털면서》, 《국밥과 희망》, 《불이냐 꽃이냐》, 《지평선에 서서》 등을 펴냈으며 1995년 문예중앙에 중편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를 발표하면서 소설에도 입문했다. 세계문학기행집 《슬픈 시인의 여행》과 한국·세계명시해설집 상·하권 《사랑의 확인》 《사랑의 변주》를 출간했다. 저서는 모두 25권. 13년 간 고등학교 외국어 교사, 11년 간의 신문사 데스크를 거쳐 현재는 조선대학교 인문대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