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단소리]시대고와 지식인
[쓴소리단소리]시대고와 지식인
  • 문병란
  • 승인 2004.07.16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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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대를 만나면 지식인의 처신이 무척 어려워진다. 구한말 위정척사파였던 매천(梅泉) 황현 선생은 1910년 한일합방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하여 음독자살하면서 절명시를 남겼다. '글 아는 선비 구실 참으로 어렵다'고 탄식하였다.

선비,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의식이자 지절일 것이다. 망국의 비보 앞에서 그는 선비의 책임감을 느꼈기에 자살로써 그 부끄러움을 참회하였을 것이다. 그 순간에도 합방을 추진한 반민족적 지식인들은 엉뚱한 축하식에서 천황폐하 성덕 운운하면서 똥개다운 개코를 벌룽거렸던 것이다.

오늘의 세태상, 과거 어느 역사의 고비에 비하여 나을 바 없는 난세의 연속이다. TV화면, 신문 곳곳에서 수많은 천재들이 그 필설을 휘두르고 있다. 네티즌들의 인민재판식 발언도 서슴치 않는 현실 속에서 곡필 곡학아세가 용납되지 않는다. 과연 정답 정론이 있는 세상일까. 매천같이 자살이나 할려면 모르지만 자신있는 해법을 가진 지식인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섣불리 무슨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죽일놈 되기 일쑤이다.

한 여행자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설악산 백담사엔 별다른 여행 관광코스가 있더란다. 왕년에 악명 높은 분이 현대판 귀양살이를 한 곳 그 곳을 말끔히 단장하여 보존(?)하는데 그 의도가 알쏭달쏭하더라는 소감이었다. 자기도 관광객 따라가 보았지만 또다른 성역화(?) 같은 느낌이어서 머리로 걷는지 다리로 걷는지 모르겠더라는 소감. 그뿐인가. 그 아들이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돈, 떠들석하다가도 뱀꼬리 감추듯 잠잠해지는 후문. 또 한 대통령의 아들은 재벌 사돈집과 손잡고 돈방석에 앉았다는 소문. 이것은 모두 소문 아닌 사실. 친일파 후손들이 정계의 권좌에 앉아 그 죄상을 밝혀내는데도 제동을 걸고…. 매천이 다시 살아나 두번 절명시를 써야 할 것인가.

역사란 과거의 거울 속에 현재를 비추어 반성하고 올바른 미래상을 구현하는 것이라면 과거 청산 없이 어떻게 개혁이 가능할 것인가. 한편으로 왜곡 은폐하면서 그 입으로 개혁·개혁 … 결국 개혁은 본사인지 후렴인지 알 수 없는 소문의 나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한때 가닥을 잡아가는 것 같던 부시대통령의 이라크전쟁이나 대북관계 입장에 대한 대미인식의 여론들 굳이 반미라기보다 자주국방 자주외교라는 듣기 좋은 말들이 대미 사과 해명에 가까운 친미 외교 '한미동맹 이상없다'식의 한반도 분단고착화 원점회귀 현상은 식자난을 또 한번 절감하게 한다.

이라크 파병은 2단계 3단계 정당화 시키면서 인류의 정의보다 국익론을 앞세워 양심압살의 하향식 여론들은 국민의 머리를 혼탁하게 만든다. 자주외교 자주국방 무슨 못할 말이나 한것처럼 꽈배기 만들어 그 말을 쉬쉬 거둬들이고 미워도 다시 한번 미국을 향한 이 유한 몸짓들 탄핵 정국 때 열린당을 급조하던 그 기세 높은 촛불은 이제 꺼졌단 말인가. 친일파 죄상 밝혀내는 것도 못한다면 참으로 살맛나는 세상은 아닌 것 같다.

이제 우리가 할일과 미국과 협의할 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매사 미국의 눈치나 보고 그들 대사관 주변에 머뭇거린다면 남북통일도 타의에 의한 흥정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자주국방 자주외교 없이 자주독립 자주민족통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라크 파병 결정에 변함없는 그 소신처럼 탄핵을 막아준 국민 앞에 흔들림없는 자주성으로 대통령 출마 당시의 대미 자세로 일관성 있는 국정운영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바지가랑일 잡는 야당 핑계는 열린당 우세의 승리 앞에서는 변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파병, 새수도 건설, 친일대상 확대, 새로운 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개혁은 착수도 못하고 무성한 소문만 떠돈다면 갓쓰다 파장격 아닌가. 말,말,말 …말은 나뭇잎과 같다. 그것이 무성할 때 열매가 적느니라. 난무하는 말과 소문 속에서 민주주의는 민주注意가 될 것이다. 개가 짖을 때마다 뒤돌아본다면 목적지에 가기 전에 해가 진다는 말이 있다. 역사의 소명 앞에 좀 더 투철한 신념을 갖자.

/문병란(시인·전 조선대교수·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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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객 2004-08-09 11:56:39
    .
    경제학 용어 중에 고용, 물가, 성장 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다
    잡을 수가 없는, 쉽지 않은 과제라는 것을 일컬어 Uneasy Triangle 이란
    말을 쓰기도 하죠.

    시대의 아픔과 지식인과 정치인의 현실 인식과 대응 논리가 서로 다른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자화상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의미의 Uneasy
    Triangle 을 보게 됩니다.

    당신같은 무능한 남편하고는 더 이상 못살겠어, 라고 뛰쳐나간 이혼녀가
    맞닥들인 '현실'은 그렇게 자신이 이혼전에 예상했던 녹녹한 현실이
    아니라, 엄청 더 험악하고 거칠고 삭막한 현실이 되어 다가서는 걸 겪고
    후배 여자들에게 거리낌 없이 주는 충고의 유전들이 있다고 하죠?
    너희들, 절대로 이혼은 하지 말아라, 라구요...

    글을 읽는 선비들이 바라보는 세상의 바람직한 모델과
    막상 집권을 하고 보니까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제반 현실세계의 여러
    힘의 논리들의 각축장 한가운데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정치인이
    현실을 다시 자각하게 되는 상황판 독도법이
    천양지차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진실"이 되죠.

    반미 자주외교 자주국방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정의"론을 펴던 자존심이
    상상 이상의 엄청난 괴력을 가진 미국의 국력 앞에 한낫 선풍기 앞의
    손부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진실" 발견으로
    여지 없이 설 자리를 잃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마는 것이 바로
    역사를 제 편에서 써갈 수 있는 "힘의 논리" 법칙이 되는 거죠.

    차이가 있다면
    그 힘의 크기를 인식하고 자결의 길을 택하는 것이 선비라면
    그 힘의 크기를 인정하고 합방조약에 서명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
    정치인의 굴신의 변명이 되어왔다는 거죠.

    세속 정치인은 이완용이나 노무현이나 시대만 달랐지 동일한 등급의
    인물일 수밖에 없는 거지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나간 과거사는 여러분들이 쉽게 손가락질 할 수 있지만
    진행중인 현재사는 여러분들이 무슨 아련한 기대와 희망을 내려놓고 싶지
    않은 미련을 걸고 있다는 것이 차이가 날 뿐이지요.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현실 속에서의 인물들은
    아무리 유명하고 제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라 칭송을 당대에서 받더라도
    많이 양보해도 한 2년 안에는 그들의 바닥이 다 드러나 보이더라구요.

    노무현 씨의 바닥은 첫 1년 안에 다 드러나더군요 ...

    미국을 손가락질 하기 전에 왜 사람들은
    무엇이 미국을 저렇게 강성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지피지기의 전략을
    연구하지 않고 - 공부하지 않고 - 단순한 정서적이고 감각적인 반응만
    재생산하고 앉아있는 건지
    저로서는 그게 더 이해가 안가는 일이 되던데요.

    증오의 재생산이 미국을 멍들게 하는 게 아니라
    한국과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을 멍들게 하는 걸 모르고 ...

    이슬람 세계의 대미 증오심 교육은 상당히 오랜 세월의 축적이 있었지요.
    여러 군데서 경고의 안테나 수신음이 들려왔는데도
    클린턴 치하 8년 동안 백악관에서 정액을 난사하는 일에 몰두하는 바람에
    미국이 이제서야 당하는 거죠. 9.11 그날을 신호탄으로 해서
    앞으로도 계속 증오대(隊)의 피의 공격을 받을 것 같더군요.

    미국의 기독교와 이스라엘을 이 땅에서 쓸어버릴 때까지
    그들은 대를 잇는 증오의 교육을 계속하는 종교+정치 연합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의 증오심은 강한 자 유능한 자에 대한 본능적 체질적 거부감 정서가
    그 바탕에 있는 것같더군요. 가장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공교육 평준화...
    지난 30년 동안의 하향평준화 교육 시스템에 대해 거부감이 전혀 없는
    집단주의 공동체 심성이 증오의 재생산 토양이 되어오고 있음을 봅니다.

    미국의 젊은 목숨들이 4만 여명이나 이 반도 땅에 묻혔는데
    감사도 고마움도 모르는 이 족속들은
    노근리 양민학살을 들먹이며 증오와 적개심으로 갚고 싶은 거죠.

    맹호부대 청룡부대가 베트콩 마을들을 어떻게 싹쓸이 청소했었는지는
    아무도 자백하지 않고...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무용담이 되어
    침묵 속으로 사라져 갈 뿐이고 ...

    그저 죽일 놈들은 미국놈들만 죽일 놈들이 되는 거죠... ?

    광주에서 바라보는 오늘의 세계가 아니라
    세계속에서 바라보는 오늘의 전라도를 볼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한 건
    아닐는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