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같았다' 북아일랜드의 민간인 살상 사건을
적나라하게 다룬 영화 '블러디선데이(감독 폴 그린그래스, 2002년, 110분)'에 대한 한 신문의 평이다.
왜 광주에서 상영돼야 하나
영화 '블러디 선데이'의 광주상영이 가진 의미는 적지 않다. 우선 사건 자체로만 볼 때,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과 이어진 민간인
학살이 24년 전 광주와 32년 전 북아일랜드 데리시의 그것이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영화 자체가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제작돼 아직도 풀리지 않은 학살의 진실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5월광주가 가진
과제와 맥이 닿아 있다. 그렇다고 정치적 이유만으로 이 영화의 광주상영 필요성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02년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과 베를린영화제 금곰상, 판타스포르토영화제의 관객상, 감독주간 부문 남우주연상, 작품상 수상등의 경력이 이 작품의 '품질'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또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달리 예술영화이기에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에서 이 만한 영화를 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하나도
낯설지 않다.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thern Ireland'. 영국의 공식명칭이다.
이처럼 영국은 본토인 그레이트브리튼섬과 그 서남쪽에 있는 아일랜드섬의 일부인 북아일랜드까지 포함한 나라다.
1801년부터 영국의 속국이 됐던 아일랜드는 1921년 독립하지만, 신교도들이 많 이거주하는 북아일랜드 지역은
영국관할하에 남겨 진다. 이는 앞서 영국이 전통적인 구교 국가인 아일랜드의 북아일랜드 지역에 신교도들을 정책적으로 대거 이주시킨
탓이었다. 결국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북아일랜드분쟁'은 신구교도들간 종교전쟁의 성격을 띤다. .
1968년
이래 카톨릭교도에 대한 영국의 차별에 항의하는 카톨릭계의 민권운동이 시작되었고, 1969년부터는 '통일 아일랜드 공화국 건설'을
부르짖는 무장단체 IRA(아일랜드공화군)의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이에 북아일랜드 신교도계도 민병대를 조직하여 IRA에 대항하였고
양측은 잦은 충돌을 빚었다.
특히 영국은 1972년 북아일랜드의 자치권을 회수함으로써 아일랜드인들의 유혈
폭력 운동을 고조시켰으며, 소위 '피의 일요일 사건'이라 불리는 유혈사태도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영국정부군의 시위대를 향한 발포
이후 양측의 테러로 30년간 약 3천200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기록됐다. 북아일랜드는 지금도 게엄과 같은 상황으로 영국에서
파견된 영국군들이 치안을 맡고 있으며, 영국의 입장에선 가장 오래되고 어려운 정치적 과제 중 하나다.
굿뉴스 전해주셔서 감사함다. ^^
광주극장도 화이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