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감독 세 번째 독립영화 ‘길’ 광주 시사회
호남지역 산야와 5일장 배경 두 사람의 상처치유
과정 그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태석이 지던 ‘모루’가 명치끝에 둔중한
무게로 얹혀 있었다. 사실 ‘모루(고통)’는 ‘길(인생)’위에 던져진 실존적 자아들이 필연적으로 짊어져야 할 일종의 등짐이었기 때문이다.
배창호 감독의 세 번째 독립영화 ‘길’은 그 자신의 말마 따나 불혹의 터널을 지나 지천명의 경지에서 터득한 진짜배기 삶의 의미가 살아
숨쉰다. 비록 그 길이 자신의 의지와 어긋나기 일쑤고 선택을 강요하는 갈림길에서 가끔씩 헤매게도 만들지만 '길’은 실존적 존재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의 궤적이다.
영화는 70년대 중반 시골 5일장을 배경으로 길 위에서 우연히-기실은 필연적인- 만난 두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았다.
“아따, 인자 포도시 봄이 올랑갑네.”
득수와 귀옥에 대한 오해를 푼 태석은 20여년만에 귀향을 서두른다. 마을 앞 이발소에 들려 면도도 하고 ‘로바뜨 떼일러’ 스타일로 머리도 다듬었지만 태석에게 봄은 아직 이르다.
태석은 신영에게 받은 아내의 ‘분첩’과 아들에게 ‘깨엿’만 남긴 채 집 앞에서 발길을 돌려 다시 길을 재촉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온전히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이어서 한결 발걸음도 가볍다.
그 순간 환청인 듯, 실제인 듯 “영식 아버지 잘 다녀오시오”라는 목소리가 영화의 첫 시작을 알리던 종소리처럼 크고 긴 울림으로 태석의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전통적 삶 통해 사라져 가는 그리움의 정서 시대 배경 담아
배 감독 “나는 완벽주의자 아닌 최선주의자…최선 다해 만족”
영화 속 태석의 일상을 좇다보면 산업화와 기계화에 떠밀려 이제는 시골 변두리 5일장에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전통적 삶과 조우하게 된다. 그것은 장돌뱅이 대장장이인 태석 자신이 수공업적 방식을 고집스레 지켜 가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이쯤해서 감독이 왜 그렇게 과거의 상처에 집착하는지, 어쩌자고 역사적 퇴행의 모퉁이를 서성이며 괴로워하는지, 그를 온전히 흘러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감독은 “70∼80년대에는 인간과 정서를 다룬 영화가 좀 있었는데 상업영화 시대를 맞아 사라져 가고 있다”며 “사라져 가는 그리움의 정서를 시대적 배경으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천만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부흥기를 맞은 한국영화가 국내외적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우리문화를 지키려는 영화인들은 오히려 상업주의 영화 속에서 고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창호 감독의 17번째 극영화이자 세 번째 독립영화인 ‘길’은 호남지역의 산야와 시골 5일장을 배경으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장돌뱅이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 배 감독 자신이 주인공인 태석 역을 맡아 열연했다.
▲ 시사회가 끝나고 팬들과 함께 광주극장 앞에서. ⓒ안형수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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