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감 따른 우울증이 자살 불렀다”
“상실감 따른 우울증이 자살 불렀다”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4.04.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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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이무석 교수 인터뷰
   
▲ 전남대 의대 이무석 교수
최근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들 대부분이 검찰조사를 받은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검찰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8월 ‘대북송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종로구 계동 사옥 12층에서 투신자살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들어서만도 벌써 4번째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뇌물수수혐의로 구속 수감된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 부산교도소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데 이어 3월에는 남상국 전 대우 건설 사장이 한강에 투신자살했다. 4월 들어 김인곤 광주대 이사장이 학교 집무실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29일에는 박태영 전남도지사가 한강에 투신, 사망한 것이다.

이와 관련, 정신과 전문의 등 전문가들은 ‘상실감에 따른 우울증’을 자살의 주된 요인으로 꼽았다.

이무석 전남대 의대 교수(정신분석·정신치료)는 “자살의 원인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 힘들다”고 전제한 후 “공직생활을 한 사람들은 명예에 최상의 가치를 두는 만큼 박태영 지사의 경우 명예상실이 자살의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아무런 실패 없이 탄탄대로의 보장된 길을 걸으며 수 십년 동안 쌓은 평판과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자 수치심과 자괴심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여기에 수감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극단적인 선택에 한몫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교수는 이어 “우울증에 한번 빠지면 모든 것을 절망적이고 비관적으로 사고하게 된다”며 “(박 지사가) 젊은 검사로부터 취조·추궁 받으며 범인취급 당하는 것을 도무지 자신의 생애에서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막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인 셈. 특히 우울증세는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또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명예의 손상”이라며 “방송이나 신문이 결과에 대해 변명의 기회를 주지 않고 미리 심판하고 판결을 내리게 되면 자존심을 심하게 손상 당하게 된다”고 말해 ‘미디어의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박태영 지사 경우 검찰 조사 받는 것에 자존심 손상 매우 컸을 것”
“한번 우울증 빠지면 비관적 사고 팽배… 범인 취급에 막다른 선택”
최근 지도층 인사 5명 잇단 자살…대부분 검찰조사 후 발생 검찰 곤혹

다음은 이 교수와 일문일답.

▲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는데 이유가 뭔가.
-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 힘들다. 일단 자살의 원인은 우울증 때문이다. 자살한 사람들은 우울증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찍 발견해서 예방을 했어야 한다.

▲ 우울증의 원인을 꼽는다면.
-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그 양상이 다르지만 일단 상실감에서 온다. 돈에 가치를 둔 사람은 경제적 손실 뒤에 우울증이 오고 인간관계에 가치를 둔 사람은 사별이나 실연 때문에 우울증에 빠진다. 공직생활을 한 사람들은 명예에 최상의 가치를 둔다. 박태영 지사의 경우 명예의 상실이 원인이 됐을 것이다. 검찰 조사를 받는 것에 무척 자존심 손상이 컸을 것이다.

▲자살 이외의 방법은 없었겠나.
- 우울증에 한번 빠지면 사고구조가 달라진다. 인생을 폭넓고 멀리 보다 우울증에 빠지면 시야가 아주 좁아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비관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
-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명예를 존중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고 살다가 젊은 검사로부터 취조·추궁 받으며 죄인취급 당하는 것을 도무지 자신의 생애에서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일반인들과는 또 다른 심리상태로 쉽게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처음 출발은 자존심 때문이지만 우울증에 빠져들면서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이들처럼 의존적이고 미래에 대해 터무니없이 비관적이 된다.

▲우울증 증상과 예방법이 있다면.
- 일단 우울증에 빠지면 평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평소와 완전히 다르게 비관적이거나 잠을 자지 못하고 밥을 잘 먹지 못한다.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화를 자주 내고 미래에 대해 터무니없는 걱정을 한다. 사람이 전과 다르게 달라졌다고 생각되면 조기에 정신과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조기에 치료를 받게 되면 많은 효과를 얻을 수있다. 주변에서 관심을 갖고 지지와 격려를 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울증은 3개월 정도 가는데 꾸준히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다.

▲ TV와 신문 등 미디어 매체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나.
- 사회지도층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명예의 손상이다. 방송이나 신문이 결과에 대해 변명의 기회를 주지 않고 미리 심판하고 판결을 내리게 되면 자존심을 심하게 손상 당하게 된다. 하지만 매스컴과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의미에서 방송과 활자매체들이 자기 이야기를 계속 하게되면 자존심에 집중포화를 맞게 된다.

▲ 일반인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없나.
-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용기를 줄 것이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어야 하고 실제로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세상살기 힘든 사람들은 저 정도의 분이 자살하니까 갑자기 자살을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 사회학자들은 자살을 사회병리현상으로 파악하는데.
- 사회학자들은 자살에 대한 책임이 사회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신의학자들은 사회적 책임보다 개인의 병적인 현상으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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