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광주인권상 수상자 아웅산 수기 여사
제5회 광주인권상 수상자 아웅산 수기 여사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4.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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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 민주화 투쟁 비폭력 방법 고수…미얀마 정치상황 지지·성원
수기 여사, 군사정부에 맞서 15년 이상 가택연금 창살 없는 감옥살이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비폭력 투쟁 평가


▲ 제5회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기 여사ⓒ518.org 제5회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기 여사(59·Aung San Suu Kyi)가 선정됐다. 5·18기념재단 제5회 광주인권상 심사위원회(위원장 박경서 대한민국인권대사)는 27일 오후 5·18기념문화센터 리셉션 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20일까지 추천된 후보자와 단체를 대상으로 심사를 한 결과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광주인권상 심사위는 선정사유를 통해 “아웅산 수기 여사는 가장 비인도적인 정권에 대항한 민주화투쟁에서 비폭력의 방법을 고수하는 용기 있는 저항으로 미얀마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다”가 평가했다. 심사위는 또 “91년 (수기 여사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에도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의 정치상황 아래 아웅산 수기와 그녀의 동지들의 변함없는 투쟁에 지지와 성원을 보낸다”고 선정 취지를 밝혔다. 심사위는 이어 “가택연금상태의 아웅산 수기여사와 망명자라는 고단한 신분으로 전 세계에서 투쟁하고있는 미얀마 민족민주동맹의 동지들에게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5월정신의 뜻을 담아 희망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날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된 수기 여사는 지난 1988년 민주화운동에 입문한 이후 미얀마 군사정부로부터 15년 동안 일곱차례에 거쳐 가택연금을 당하는 등 정치적 박해를 받아 왔다. 이 때문에 수기 여사는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수기 여사는 1988년 4월 영국에서 귀국한 후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으며 9월에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을 결성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해 9월 군사정부가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하자 그녀의 인생도 고난의 나락으로 급전직하했다. 군사정부가 내란선동죄를 적용해 15년 동안 7차례에 거쳐 가택연금을 되풀이하는 등 철창없는 감옥살이를 시킨 것이다. 수기 여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90년 5월 다당제 선거 실시라는 성과를 이끌어 낸다. 총선거를 통해 수지여사가 이끄는 NLD는 전체 의석 485석 가운데 396석(81.7%)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둬 제1당의 위치에 오르는 듯 했다. 그러나 군사정부는 총선이 국민의 의사를 전체적으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NLD에 정권이양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세계는 1991년 수기 여사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줌으로써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민족적 화해를 향한 그녀의 비폭력 투쟁에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줬다. 수기 여사는 1995년 한때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후 NLD 사무총장으로 정치활동을 재개하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가택연금과 해제를 거듭하다 지난해 5월30일 이후 다시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미얀마 군사정부는 31일부터 민주화를 위한 개혁안의 첫 단계에 들어갈 예정이며 신헌법 제정을 위해 국민회의를 소집하는 다음달 17일 이전에 수기 여사의 가택연금을 해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5.18기념재단 제5회 광주인권상 심사위원회 ⓒ518.org
한편 광주인권상 시상식은 다음달 18일 오후 5시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수상자에게는 미화 1만달러와 금장메달 등이 수여된다.

역대 수상자로는 제1회 수상자인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2000년)을 시작으로 바실 페르난도 아시아 인권위원회 위원장(2001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2002년), 단데니야 G. 쟈얀티 스리랑카 실종자기념회 대표(2003년) 등이 있다.

‘광주인권상’은 지난 91년 제정됐던 ‘5월 시민상’과 ‘윤상원상’이 2000년 통합된 것으로 5·18민중항쟁의 궁극적인 지향점인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위해 공헌한 국내외 개인과 단체에 수여 된다.

아웅산 수기 여사 약력

1945년 6월 19일 랭군 출생
1964년 영국 옥스퍼드 철학전공
1985년 교토대학 동아시아 연구소 방문교수, 버마민주화운동관련 논문 다수 발표
1988년 8월 인권의 보장과 권리를 위해 처음으로 정치적인 행동을 함
1988년 9월 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설립
1989년 재판도 없이 가택구금을 당함
1990년 NLD가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고 같은 해 10월 Rafto Human Rights Prize 수상
1991년 유럽국회로부터 인권상 수상
1995년 가택구금에서 풀려난 후 군사정부에 대항해서 협상을 통한 정치적 개혁을 요구함.
2000년 그녀의 NLD멤버들과 군사정부에 의해 가택구금을 당했고 같은 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대통령메달을 수상함.


제5회 광주인권상 수상자 결정문

1962년부터 시작된 버마의 군사정권은 초기부터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학생들을 탄압하고 많은 이들을 살해하였습니다. 일당체제 정치가 계속 되 온 버마는 1974년 군법을 대신한 헌법이 만들어졌으나 군사정권은 계속하여 집권하였고, 1988년에 버마학생 시민들의 민주화시위가 일어났을 당시 버마 군부는 무자비하게 이를 살육하고 진압하였습니다.

이후 위기를 느낀 군사정권은 총선거 실시와 권력이양을 약속하며 버마 최초로 총선거를 치렀고, 5월 총선거에서 NLD(버마민족민주동맹)는 군사정권을 누르고 88.5%총선 승리를 이루었으나 버마군사정권은 이를 무효로 하며 여전히 집권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버마시민들이 군사정권의 폭정을 피해 조국을 떠나 망명하였고 이들은 온 세계에 퍼져 아직도 힘들고 어려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버마의 아웅산 수기여사는 1988년 군사독재의 무자비한 민주화운동탄압 속에서 시민을 이끈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아웅산 수기여사는 인도의 간디와 미국의 마틴 루터킹의 비폭력 운동에 의해 영감을 받아 가장 비인도적인 정권에 대항한 민주화 투쟁에서 비폭력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용기 있는 저항은 버마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이로 인해 7차례의 가택연금 조치가 취해졌으며, 2003년 5월 30일 이후 여전히 그녀는 억류 상태에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아웅산 수기의 변하지 않는 투쟁에 지지와 성원을 보냈고,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은 수상자가 원했던 뜻을 많이 이루었으나 유독 아웅산 수기여사와 그녀의 동지들은 여전히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으며, 이는 '80년 암울했던 우리의 상황보다 더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이에 제5회 광주인권상 심사위원회는 수상자로 아웅산 수기 여사를 선정하며, 아웅산 수기여사와 더불어 망명자라는 고단한 신분으로 온 세계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있는 버마민족민주동맹의 동지들, 그리고 여전히 차디찬 감옥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조국의 민주화를 기다리는 2,000여명의 버마 양심수들에게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5월정신의 뜻을 담아 희망의 마음을 전하는 바입니다.

2004년 4월 27일

재단법인 5·18기념재단
제5회 광주인권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박경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대한민국인권대사)
위 원 설동일(사단법인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위 원 박석무(재단법인 5·18기념재단 이사장)
위 원 김경남(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념사업본부장)
위 원 임선숙(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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