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향기]따뜻한 밥상 공동체 만들기<1>
[삶의향기]따뜻한 밥상 공동체 만들기<1>
  • 시민의소리
  • 승인 2004.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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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안[빛고을생활협동조합 이사장]

“같이 밥 먹기 운동” 해야 할까 ?
어렸을 적, 커다랗고 둥근 상에서 삼촌, 고모, 동생, 할머니, 엄마 여럿이서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누가 먼저 차지하나 눈치를 보기도 하고, 웃음꽃이 피어나며 떠들썩하기도 했었다. 어릴 적 밥상의 추억은 참 푸근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들은 식구들이 한자리에서 밥을 먹기가 힘들다. 한 사람씩 차례차례 먹고 나가니 국이나 찌개를 여러 번 데우는 주부는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집에서 밥을 먹으면 다행이다. 보통 여기저기 흩어져 살면서 밥을 사먹고 사니, 요즘 가족들은 진정한 식구가 아니다.

식구(食口)란 같은 집에서 끼니를 함께 하며 사는 사람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밥을 같이 먹지 않는데 가족이 지탱할 수 없다고 극단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음식이 피를 만드는데, 이 음식이 같아야 비로소 같은 피를 나누는 애틋한 가족이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제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친부모가 자기 자식을 굶기고 학대하여 기아와 상처에 허덕이다 탈진 직전에 구출된 5세 여자아이의 처참한 모습이 비쳤다. 너무도 충격적인 그 모습과 경쟁 사회에서 일터로, 학교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가족들의 처량한 모습들을 같이 떠올리는 것은 무리한 상상일까?

언젠가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 들렀을 때였는데, 정오부터 오후2시까지는 온 마을 사람들이 점심밥을 먹느라고 상점도 문을 닫는 것을 보고 매우 신기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밥을 먹으러 집에 왔다가 다시 가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 급식을 10분 이내에 후다닥 먹어치우고 뒤로 물러나는 것과는 너무도 비교된다. 꼭꼭 씹어 삼켜야 하고 조용히 담소를 나누며 여유 있게 먹어야 소화가 잘 된다는 가르침을 하기에는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내가 어렸을 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체급식을 하지만, 여기에는 그때의 푸근한 밥상공동체란 없다. 무엇을 위하여 이리도 급하게 먹어치우고 사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위하여 1분이 아깝다며 책상에 매여야 하고, 일터에서 새벽과 밤늦게까지 고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우리 식문화의 위기를 더욱 절실히 느낀다.  무한경쟁 사회로의 질주, 구조 조정, 농촌공동체의 파괴, 속출하는 식품 사고들, 조류독감과 광우병 같은 재앙들…. 

부모와 어른으로서 너무도 부끄러워 우리 아이들 앞에 바로 설 수가 없다. 그러나 계속 숨을 수만은 없는 법. 생명을 살려내는 모성애를 가지고 진정한 식구공동체, 밥상공동체를 살려야 하지 않을까?

‘하루 한 번 이상은 식구가 한 상에 둘러앉아 밥 먹기 운동’을 펼쳐야 하지 않을지 심각하게 고민해본다. 

/이희안[빛고을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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