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을 허(許)하라
광장을 허(許)하라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4.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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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정치학교 ‘휴교령’ 인터넷 바다엔 '재갈'
촛불집회금지…인터넷실명제로 네티즌 사전검열

   
▲ 지난 3월 20일 금남로 도청앞에서 열린 촛불시위 ⓒ김태성 기자
촛불의 광장과 인터넷의 바다에 ‘앙시앙 레짐’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탄핵안 가결이후 촛불을 밝히던 광장에 어느 순간 일몰을 알리는 ‘통금’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머지않아 바리케이드까지 쳐질 모양이다. 기실 촛불이란 어둠을 밝히라고 있을 터인데 ‘어두운 과거로 퇴행하는 현실’을 올바르게 인도할 수 없다면 촛불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동시에 인터넷의 바다에도 ‘실명제’라는 ‘빨간불’이 점등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디지털의 광장에도 네티즌을 위한 ‘등대’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자기를 사전 검열하는 일종의 ‘감시등’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학습하는 최고의 정치학교가 ‘선거법’이라는 바리케이트에 봉쇄돼 ‘휴교령’으로 치달을 위기에 처해 있는 형국이다.

이와 관련, 검찰이 ‘통금위반’을 이유로 ‘탄핵무효 국민행동’ 지도부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말썽을 빚고 있다. 일단 법원에서 기각결정을 내려 일단락 되기는 했지만 앞으로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

이에 뒤질세라 정부도 중앙선관위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다음달 2일부터 탄핵 찬·반 집회를 포함한 사실상 모든 집회를 원천봉쇄하기로 결정했다. 선거기간 중에 개최되는 탄핵 찬반집회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불법집회’라는 것이다.

정부·중앙선관위, 내달 2일부터 탄핵찬반 집회 등 원천봉쇄
검찰도 야간 촛불시위 주도 탄핵무효국민행동 지도부에 영장
네티즌 “인터넷실명제 표현의 자유 억압” 불복종운동 선언

이에 대해 국민행동 측은 촛불집회는 ‘탄핵규탄을 위한 헌법적 저항권’으로 ‘선관위의 결정이야말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법당국과 선관위가 ‘법’보다는 다분히 ‘정치권’을 의식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행동 측은 27일 집회를 예정대로 치른 뒤 30일 경찰에 자진출두해 향후 촛불집회에 대한 계획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촛불집회 계속’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운 상태다.

어쩌면 이 같은 상황은 지난해말 개악 집시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때문에 전국민중연대·참여연대·민주노총 등 국내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가 망라된 ‘개악 집시법대응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는 이미 그 위험성을 경고하며 집회신고를 거부하는 등 ‘불복종 운동’을 전개해 왔다.

연대회의는 또 “개정 집시법이 헌법에 보장된 집회 및 결사의 자유와 기본권 과잉금지 제한 조항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연석회의는 이어 개악집시법의 해악이 ‘탄핵규탄 촛불시위’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남에 따라 오는 17대 국회에서 집시법 재개정 운동을 적극 펼쳐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인터넷의 바다를 떠도는 ‘실명제’도 첨예한 논란거리다.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선거법 개정안에 따르면 ‘인터넷 언론은 네티즌이 게시판·대화방 등에 선거에 관한 의견을 올릴 때 작성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 받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를 포함하고 있는 선거법 개정안은 다음달 2일부터 법적 효력을 가지게 된다.

이에 따라 중앙선관위 산하 인터넷선거보도 심의위는 지난 24일 선거기간 심의대상 인터넷 언론사를 발표했다. 하지만 대부분 해당 언론사들은 “인터넷 실명제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불복종 운동’을 밝히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 인터넷검열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 등은 지난 18일 “헌법 제21조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있다”며 인터넷실명제를 담은 선거법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도 2월17일 의견을 내 “모든 국민을 허위정보·비방 유포자로 전제하는 명백한 사전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 한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와 여론형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로 규정한 바 있다.

인터넷언론사들도 조만간 대표자 모임을 갖고 선관위 항의방문과 1인 시위 등 다각적인 반대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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