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시민혁명 원년의 장엄한 출발
[신년사]시민혁명 원년의 장엄한 출발
  • 문병란
  • 승인 2003.12.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뒤틀리고 소란했던, 거듭된 시행착오의 계미년(癸未年)이 가고, 정말 달라지고 새로워져야 할 갑신년(甲申年) 2004년이 장엄한 서막을 연다.
 역사상 갑신년은 1884년의 소장파 개화당들에 의한 3일천하 쿠데타 역사적 거짓말 같은 반짝 쇼 3일천하 사건이 있었고 10년 후 1894년엔 관제개혁인 갑오경장이 개띠를 골라가며 근대화의 몸부림을 쳤다.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구호 아래 일본이나 서구의 신문명을 받아들이면서 개화바람이 불었지만 그 후 차츰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속에서 나라는 망하고 왕국을 고수하겠다던 수구 세력들은 하나같이 매국노로 전락하면서 36년간의 일본 식민지, 58년간의 분단국가, 켜켜히 쌓인 원과 한의 사무친 비극의 현대사가 세기를 바꾸면서까지 절망과 희망의 엇박자 속에서 제야의 종을 몇 번이나 울려봐야 아무 소용없는, 우울하고 답답한 새해가 정말 오기도 민망한 듯 슬그머니 달력을 밀치고 다가오고 말았다.

민망한 듯 슬그머니 다가온 새해

신년원단! 설빔으로 마련한 새 옷 입고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첫 아침의 세배! 웃어른의 건강과 안녕을 빌면서 세찬과 세주를 받고 또 복주머니 가득 세전을 담아주는 그래도 설날만은 새 마음 새 희망을 가지고 온 가족 온 국민이 한 마음 되는 그 순간이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2004년 원단을 맞이하는 우리 민족은 어떠한가. 남북한 해외동포 7천만으로 추산되는 한민족은 묵은 세기 묵은 해의 역사적 책무를 고스란히 큰 빚으로 떠안은 채 묵은 은원을 하나같이 해결하지 못하고 모순과 갈등의 증폭 속에서 동서남북 계층간 대화의 통로 단절 사상 이념의 불일치 상반된 이해갈등의 심화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떡국인들 제 맛이며 세찬과 세주가 무슨 흥이랴. 이런 판국에 꽹과리를 치고 날나리를 분다고서 그것이 제 음이 나고 제 가락이 울리겠는가. 밑에서부터 위에까지 그 의자들은 그럴듯하지만 모두 다 억지 춘향 같이 그 밀가루 분바른 도화역사꼴이 민망스럽기만 하다.

 동해 바다로 가고 남해 바다로 가고 명산 대찰 찾아가 아침 첫 해를 맞으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축하와 단소리 제쳐놓고 쓴소리 늘어놓는 심정인들 편할 리 없지만 허장성세의 신년사 쓰기에 앞서 국민 개개의 철저한 자기혁명 없이는 1월 1일도 하나의 숫자놀이에 불과할 것이다.

 1920년대에 변절 가능성을 지닌 친일성향의 문인이 「민족개조론」을 써서 빈축을 샀다. 식민정책을 간접적으로 합법화시키면서 망국의 책임을 국민 개개인에 전가시키는 저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라 망함이 어찌 모두 침략자의 침략 야욕에만 있겠는가.
그 야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것을 막아내지 못한 무력한 정부나 국민의 책임도 반반이었을 것이다. 이제야말로 온 민족이 거듭나야 할 민족개조론을 주장하고 그 구체적 의식혁명 시민혁명의 기치를 내걸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주권재민이 맞다면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주인이 주인 노릇을 못하고 구경꾼 노릇이나 하고 오히려 권력의 그늘에서 전근대적 노예의 근성으로 빌빌댄다면 이 나라의 현실에 대한 책임은 반반 그 이상 전적으로 우리 국민의 무기력 내지는 자기 책임 방기에서 연유되었다 할 것이다.

시민 스스로 주인 노릇하자

 시민혁명이란 대통령의 발언을 되씹어 보면 국민이 할 소리를 했다는 그 주체에 대한 의구심일 수는 있으나 1789년 프랑스혁명과 같은 근대민주주의 혁명을 정식으로 경험하지 못한 우리들에게 4.19와 5.18의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교훈이 아직도 우리 민족의 민주 역량으로 생생히 살아 있다.

 2004년 총선의 해! 신춘 정가의 이합집산 그 정치적 난맥상을 정리하고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온 입법부 국회와 행정부의 선거비리 사법부의 편법비리 등을 일소하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시민혁명 원년의 장엄한 출발을 신년사의 핵으로 제시해 마지 않는다.

 끝으로 우리가 해야 할 그 말을 먼저 선도적으로 제시해준 노무현 대통령의 시민혁명론도 있지만 새해 갑신년의 시민들은 우선 선거혁명부터 시작하여 이 땅에 새로운 정치가 자리 잡도록 국민 개개인의 의식 혁명을 통해 지난날의 방관자 구경꾼이나 그 부정의 하수인에서 이제는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는 심판자 경각자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다.

/문병란(본지 발행인, 시인, 전 조선대 교수)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