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의회 '주민소환'의 ‘꼼수’
전남도의회 '주민소환'의 ‘꼼수’
  • 이광재 기자
  • 승인 2004.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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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사 ‘사퇴결의안’채택...내친김에 '주민소환조례'도

전남도의회가 개혁적인 조례제정에 나섰지만, 그 추진배경이 다분히 ‘정략적’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남도의회는 지난 18일 제192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 ‘주민소환조례’를 부의(접수)시켰다.

주민소환조례는 시장, 구청장, 시의원 등 선거직 공직자가 임기 중 부정ㆍ비리행위를 한 경우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공직에서 해임시키는 제도다.

이 주민소환조례는 도의회 행정자치위 김창남 위원장이 대표발의하고 20여명의 의원이 서명해 17일 의안계에 제출함으로써 본회의에 접수됐다. 이 조례는 선출직 공무원 스스로가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책임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조례제정운동을 벌여온 바 있다. 또한 조례는 지금까지 주민 발의로 추진된 곳은 있지만, 의원발의로 추진되기는 전국에서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전남도의회가 주민소환조례를 추진한 데 대해, 지역 정가에선 ‘다른 꼼수 때문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번 주민소환조례 논의의 발단은 지난 15일 박태영 전남도지사가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 우리당에 입당하겠다고 발표한 데서 시작됐다.

이날 민주당 소속 도의원 20여명은 비상총회를 열어 박지사의 당적변경에 대해 비판하며 사퇴를 촉구했고, 일부 의원들이 “박지사가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다면 주민소환조례를 제정하는 방안도 찾아보자”고 나섰던 것.

실제 한 의원은 이날 자유발언을 통해 “국회에서 대통령을 탄핵한 것처럼 도의회에서도 박지사를 탄핵하는 방법이 없겠냐”고 묻기도 했다. 또한 당시 김창남 의원도 “비록 탄핵정국이긴 하지만, 어차피 그동안 논란이 있었던 주민소환제를 이번 기회에 주민소환제를 본격적으로 다뤄보자”는 요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당시 이들이 주장한 ‘주민소환제’ 논의의 중심에는 박지사에 대한 탄핵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의원들은 이날 비상총회에서 모아진 ‘박지사 탄핵일정표’에 따라 지난 18일 열린 임시회 본회의에서 박지사에 대한 사퇴결의안을 채택했다. 전체 49명(민주당 42명)의 도의원 가운데 투표당시 36명이 참석, 30명이 찬성(반대 2, 기권4)하는 압도적 지지로 사퇴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도지사에게 정치적 부담을 안긴 것이었다.

그리고 민주당 의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전남도의회는 “사퇴결의안 채택으로도 박지사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소환조례제정을 서두르자”는 당초 결의에 따라 상임위에서 추가논의를 거친 뒤 다음 회기에서 이 조례를 본격 심의할 계획이다.

전남도의회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지역정가에선 ‘보복성 조례제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사실 주민소환조례는 이미 지난해 9월 광주전남개혁연대 등 이 지역 25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주민소환조례제정운동본부’를 구성해 추진해온 사업이다. 운동본부측은 우선 광주시부터 입법화를 추진한다는 방침 아래, 지난 2월 광주시민 1만 8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시청 민원실에 접수시킨 바 있다.

광주전남개혁연대 류동훈 사무국장은 “도의원들이 본인들도 소환할 수 있는 소환조례를 만든다 것은 그 자체로도 우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고 밝혔다.

류국장은 이어 “하지만 조례가 만들어진다 해도 주민들이 서명해서 다시 청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지역민들의 지지도가 민주당에서 우리당으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조례를 통해 박지사의 당적변경에 대해 영향을 주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때문에 결국 민주당 소속의원들이 중심이 된 전남도의회의 ‘주민소환조례제정’운동은 박지사에 대한 ‘보복성’으로 시작했지만, 당초 ‘의도한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스스로의 발목만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이 과정을 통해 한번 뽑아놓으면 어떤 부정비리를 저질러도 4년을 기다려야하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기대를 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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