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생명과 자유' 광주정신 ... 시민들이여, 정치에 매몰되지 말라
[기고]'생명과 자유' 광주정신 ... 시민들이여, 정치에 매몰되지 말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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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시인]
나는 그를 '선생'이라 부르고 싶다

시인 김지하씨(60)가 19일 오후 광주 북구청이 광주전남작가회의와 함께 마련한 제3기 북구문화아카데미 개강 연사로 초청돼 민족문화의 르네상스를 위한 광주역할을 강조했다. 여기 두글은 당시 강연을 직접 취재한 김선출 광주매일 문화체육부장은 dk21에 올린 글과 이 글을 읽고 김준태 시인이 자신의 의견을 밝힌 내용이다./편집자주


광주는 5년간 정치적 승리에 만족하지 말고 새로운 문화의 세기가 요구하는 큰 담론과 이를 실천하는 큰 걸음을 걸어야 한다.

   
▲ 김지하 시인
김지하는 이제 萬海적 리얼리스트이다! 리얼리즘이 끝났다는 것은 오해, 약화된 리얼리즘 세계에 초월적 세계관으로 보완 광조 오늘날은 리얼리즘 그것만으로는 구원될 수 없는 세상이다. 때문에 그 위협받는, 혹은 약화된 리얼리즘 세계 속에다가 초월적 세계관을 불러들어야 한다.

경애하는 김선출님! 님의 글을 종종 DK21에서 볼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비판적 안목을 가지면서도 '이 풍진 세상을' 늘 따숩게 껴안으려는 님의 오지랖 넓은 가슴팍을 그래서 좋아합니다. 지난 19일 광주시 북구 청소년수련관(청소년문화관) 대강당에서 가진 김지하 시인(나는 그를 '선생'이라고 부르고 싶을 때가 많다)의 강연을 자세히 DK21 게시판에 게재해 무엇보다도 기뻤습니다.

'역시 김선출이다!' 하는 생각을 갖게 할 만큼 우리 선출님은 김지하시인의 강연을 어느 한 부분도 빼놓지 않고 경청했음을 이번 님께서 글을 올린 게시판에서 다시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좋았습니다. <광주매일> 문화면에서는(신문의 한정된 지면 여건상) 다 담을 수 없는 강연 내용을 DK21을 드나드는 네티즌들에게 아주 상세하게 재연시켜 주고 있어서 나 또한 흡족했습니다.

내 생각인데 이 글을 다시 손질해서 아나로그 페이퍼(인쇄매체)에 게재했으면 어떨까 싶소이다.

언제나 존경하는 아우, 그리고 김선출부장님! 그런데 님께서 올린 글 가운데 아주 중요한 대목이 김지하의 말과는 다르게 표현되고 있어서 제가 감히 수정해 드리오니 해량하시옵길 바랍니다. 님이 잠시 놓친 오기 대목인즉 이렇습니다. -김지하 시인께서는 '이제 리얼리즘 시대는 지났다.

초현실주의적 사고가 요구되는 소위 디지털시대가 우리에게는 당도했다'고 선출님께서는 기록하고 있는데, 그건 아마 우리 선출님께서 잠시 김지하 시인의 말씀을 잘못 들으신 것 같습니다. 하기야 난해(나는 그의 강연이 난해하다는 것에 긍정적 생각이다.

세상의 삶이 어려운데 어찌 그것을 풀어가는 말까지 난해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는 생각 때문에서다)하기로 유명한(혹은 소문난) 김지하시인의 강연을 100% 그대로 옮긴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좌우지간 그건 그렇고...김지하 시인께서 그날 말씀하신 의도는 (분명히 나도 메모했습니다만) "오늘날은 리얼리즘 그것만으로는 구원될 수 없는 세상이다. 때문에 그 위협받는, 혹은 약화된 리얼리즘 세계 속에다가 초월적 세계관(김지하 시인은 이것에 대한 생명력 있는 대안으로, 그 패러다임으로 弘益人間과 理化 世界를 들고 있지요)을 불러들어야 한다"고 분명히 강조했습니다.

그러니까 김지하 시인께서는 리얼리즘이 깨져버렸다는 말을 한 것이 아니고, 그 약화된 리얼리즘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예의 '초월적 세계관'을 대안으로 내놓은 것인데 그것이 다름아닌 그의 '율려(律呂)' 사상인 것입니다.

김선출님께서 말씀하신 부분-그러니까 리얼리즘은 끝났다고 하는 부분은 그래서 잘못된 誤記이고 오해이며, 그리고 김지하시인이 말씀하신 '초월적 세계관'을 엉뚱하게도 '디지털 시대 이제는 초현실주의'라고 하는 대목은 정말 커다란 실수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초현실주의는 아시다시피 서양 사상사(특히 문예사상사에서)에서 나온 말로 2차세계대전을 앞뒤로 해서 나타난 문예학적 사상의 흐름인데-이것은 프로이드의 영향권에서 형성되었으며 그 선두주자들이 프랑스의 앙드레 브르똥, 뽈 엘리아르, 루이 아라공 친구들이 아닙니까.

예컨대 함축해서 말하면 서양에서 나타난 초현실주의는 夢想적(이걸 심리학과 문예학에선 마취상태와 같은 심리 속에서 일어나는 '자동기술적 현상' 과 같은 것을 말하지요) 의미가 훨씬 더 많은 용어입니다.

즉 프로이드가 말하는 몽환적'꿈'의 세계를 현실(리얼리티)보다 더 우위에 두는데 이건 때로는 병적 증후 현상을 동반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휘를 김지하 시인이 지금까지 줄기차게 추구해오고 있는 '초월적 세계관'과 같은 뜻으로 풀이한다면 정말 큰 誤記요 실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뜻에서 저 김준태가 외람되게 오기를 정정해 dk21에 올리오니 해량하시옵기 바랍니다.

이건 '반론'이 아니라 오기에 대한 정정일 따름입니다. 어쨌든 우리 김선출님께서 게시판에 올린 <김지하 강연초>는 이상 두 대목만 제외하고 김지하시인 그 강연처럼 정말 진지하고 성실한 기록이었습니다.

그점 거듭 감사드리며---한 마디 사족을 단다면, '리얼리즘'은 우리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절대로 소멸할 수 없는 것 이며(이건 이미 소크라테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문명사적 철학사에서 예증하듯) 오히려 그것의 폭과 의미가 더 확대 재생산되고 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인간의 삶(Living)이 이토록 치열하고 리얼(Real)한데 어찌 리얼리즘(이 어휘를 '事實主義'라고 번역하는 것은 일본식 번역이다. 그래서 나는 그 뜻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 '리얼리즘' 어휘 그대로 쓴다)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우리가 함부로 남발하는 쉬르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디지털리즘도 예의 리얼리즘이란 나무의 잔 가지에 불과하며 그것의 또다른 몸부림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리얼리즘은 한말로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는, 예컨대 밥먹고, 똥누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울고, 외로워하고, 분노하고, 미쳐버리고, 그러나 또 저 내일을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는 삶의 에너지 그 자체이며 눈동자요 맥박이 아닐까요!? 김선출님! 쓰다보니 내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용서하길.

그리고 덧붙인다면-김지하시인은 김선출님께서도 그대로 옮겼듯이 '광주와 전라도는 한반도의 모든 한과 비극적 상황 그리고 고통을 축약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바로 여기에서 그 어떤 생명적 발전적 미래전망적 전국가적 패러다임이 나와야 된다, 하는 그런 내용이었고, 그러니만큼 현단계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해서 그냥 낮잠만 자지 말고 옛날처럼 항상 우리의 앞길에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것이었는데 말입니다.

2001.4.22일 새벽에, 북구 연제동에서 김준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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