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역사와 후손을 생각하라
[투데이오늘]역사와 후손을 생각하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4.02.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찬성[자유기고가, 번역가 '페다고지'등 번역]

백의민족의 이라크파병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듯하다. 적어도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와 군부, 여야 정당은 물론 극우-수구 언론이 우리가 마땅히 파병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처럼 와글거리고 있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이든, 일제와 미군정 시절에 매국을 통해 얻은 권력이든, 독재자에게 아부하여 얻은 권력이든 모든 권력이 나서서 파병을 주장하면 국민이 어떻게 말리겠는가.

헌법 제72조에 따라 이런 중대사를 한번쯤 국민투표에 붙여봄직도 하련마는 그런 기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니 결말은 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나쁜 짓도 명분을 세우는 판이라 명분이 없을 수 없고, 그래서 나온 명분이 보은과 국익 두가지인 성싶다.

'보은과 국익' 파병 명분 없다

보은을 이야기하자면 입은 은혜가 있어야 하는데, 특히 극우세력들이 내세우는 은혜는 미국이 민족상잔의 전쟁에서 우리편을 들어주었다는 것으로 들린다. 물론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침공해서 미국이 나서 고구려를 물리쳐준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없다.

공산주의의 침략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주기 위해 나섰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위스콘신주 공화당 상원의원 매카시가 그것도 1950년 2월에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검거열풍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메카시 선풍이 얼마나 거셌으면 백과사전에서도 미국을 “필요 이상으로 경색된 반공노선을 걷게”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내 말인즉 1950년에 미국은 공산주의 증오병에 걸려 있었으며, 결코 계산없이 선을 위해 악과 싸우는 정의의 사도들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런 판에 공산주의 북한인민공화국이 감히 대한민주주의공화국을 침략했으니 손놓고 가만있을 수는 없지 않았겠는가? 그 와중에서 입은 은혜도 은혜라면 미국과 소련이 독일-일본과 싸워준 덕분에 입은 은혜도 은혜이니 민족이 양분된 지금은 우리가 베트남에 이어 이라크에서 피를 흘려주고, 통일이 되고 나면 체첸 쯤으로 가서 소련을 위해 한번쯤 피를 흘려주어야 하리라.

권력자들이 말하는 국익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미무역을 비롯한 국제역학관계에서 유일초강대국 미국의 미움을 사서는 좋은 일이 없을 테니 알아서 기고 어부지리로 이라크재건에 참여하여 떡고물도 챙긴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대이라크 침략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석유메이저들과 유착관계에 있는 부시가 이라크의 석유를 노리고 대규모 살상무기 운운하며 일으킨, 말하자면 깡패가 아이의 손목을 비틀고 과자를 빼앗을 욕심에서 만들어낸, 전쟁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요즈음 점차 입증되고 있듯이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결국 예상 밖으로 반항이 거센 아이 손을 비트는데 한몫 거들고 빼앗은 과자 부스러기를 얻어먹자는 말이 된다. 세상사람들의 조소를 자초하는 짓일 뿐 명분치고 너무 허약하다.

그러나 막상 더 큰 문제는 다른데 있다. 자고로 서양인들의 전쟁에는 종교문제가 개입되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부시는 방탕하게 살다가 40세에 입문한 곳이 남부 침례교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우파였고, 이 복음주의 교단은 세상을 선과 악으로 이분하는 근본주의 선악관으로 미국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에 오른 부시는 곧바로 “악의 축”과의 전면전을 선언했고, 끝내는 “후세인 축출은 신의 뜻”이라며 “미국과 미국을 수호하는 모든 이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하고서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가 믿는 신앙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침략전쟁부인' 헌법정신은

그런데 신앙은 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침공한 이라크 후세인에게도 신앙이 있었고 전쟁 첫날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는 “우리는 신에게 맹세한대로 거룩한 순교자나 승리의 영웅이 될 것”이라고 응수하고 나왔다. 신을 앞세운 종교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11세기말에서 13세기말까지 가다서다 했던 십자군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알라를 신봉하는 아랍세계가 자기네 자존심을 짓밟은 만행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친미를 넘어 숭미를 노래하던 우리나라에서 5.18만행이 자행된 다음, 미국이 사주 내지는 묵인했다는 의혹만으로도 5년 4개월 후에 광주 미문화원이 불탔고 그후의 사정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아랍민중이 빠르게 혹은 서서히 키워가고 있는 적개심은 세계에 얼마마한 충격으로 폭발할지 모른다. 그런 마당에 우리가 그들의 적의 하수인으로 나서 손에 피를 묻히겠다고 하는 것은 보은과 국익으로 얼버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긴 역사와 후손을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이전 국방장관 헨리 키신저는 “미국의 외교정책이 새로 규정되는 ‘역사적 전환젼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카터 대통령 시절에 국가안보담당보좌관을 지낸 브레진스키는 “부시 행정부 내의 일부 보수파들이 이란과 북한 등 나머지 악의 축 국가들과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헌법 제5조)는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 민족 반쪽이 침공을 받을 때 민족사적 비극을 어떤 원칙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

/성찬성(자유기고가, 번역가)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