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에 실망하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에 실망하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4.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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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명인에게 너무 무심하고 유명인에게 너무 유심한 것 같다.
무명감독의 좋은 작품은 도무지 힘을 펴지 못한다.
유명감독의 맹한 작품은 냅둬도 난리법석이다.
물론 그게 세상 인심이기도 하고, 이런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설사 세상이 그래서 밉더라도…

▲ 태극기 휘날리며 한국영화가 마구 휘몰아치고 있다. [실미도]가 기어코 1000만을 넘어섰다고 하고, 이번 [태극기 휘날리며]도 1000만을 넘어서겠다는 다짐이 대단하다. 헐리우드에서 엄청난 돈을 들인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마저 이런 휘모리를 따라잡지 못한다. 우리 영화가 잘 나가는 게 기쁘지 않을 수 없겠으나, 그리 신나지 않고 자꾸 불안하다. [실미도]를 [투캅스]의 강우석 감독이 만들었다길레, 영화가 고만고만하겠다 싶어 별로 볼 맘이 없었는데, 관객이 600만을 넘어서서 [친구]의 기록을 깰 것 같다기에, 그 ‘대중성’을 소홀히 넘길 수가 없었다. 돈을 쏟아 부은 마케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실미도 사건’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런 선동이 먹혀들 만한 소재였다. 그러니까 [실미도]는 영화 자체가 어떠하든 ‘실미도 사건’이라는 소재 덕을 톡톡히 보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치고는 그리 못 만든 것도 아니고 그리 잘 만든 것도 아니다. 순 관객 입장에서 가슴 뭉클한 대목이 두어 번 있었고, 마지막 함께 자폭하기 직전에 선혈로 이름을 써 가는 비장함은 가슴 아팠다. 그러나 나머지는 별로 였다. 설경구나 허준호의 연기는 별로 돋보이지 않았고, 갈수록 굳어 가는 안성기의 연기는 그대로 고지식하였다. 지옥훈련이나 액션도 그저 그랬고, 무대나 소도구도 부실했다. ‘실미도 부대’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이 보여주어야 할 복잡한 감정의 흐름을 ‘선과 악’을 뚜렷하게 구분지어 단순하고 상투적으로 처리해 버림으로써,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방심하여 영화 전체가 깊이를 잃어 버렸다. 앞 이야기를 줄이고, 교관과 훈련병 사이의 심리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이런 정도의 영화에 박정희 시대나 반공문제까지 이야기할 맘이 나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이 그리웠다. [실미도]

[태극기]는 [실미도]보다 더 실망스럽다. [쉬리]는 또 하나의 상투적인 반공영화였다. 그러나 “한국영화가 아직 헐리우드의 재미를 따라가진 못하지만, 이젠 이 정도의 재미를 만들어내는구나!”하며 그 가능성이 대견하였다. 한석규 최민식의 연기도 좋았다. [태극기]도 그러하다.

전투장면은 [라이언 일병]을 많이 참고하였고, 거기에 [진주만]의 전투기 장면을 흉내내었다. 아직 그걸 따라잡긴 멀었지만 많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장동건이 [친구]보다는 격이 떨어지지만 무척 고생스럽게 연기하였으며, 원빈도 단지 얼굴 파는 배우는 아니었다. 세트장은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구멍이 보였지만, 의상은 상당히 세심하게 정성이 들어 있다.

중공군 인해전술 장면은 폼 잡으려다가 말았고, 전투장면에서 국방군이 인민군을 신나게 두들기는 일방적 장면으로 가득하였다.( 아직도 그 유치함을 못 말리고 있다니 놀랍다. 그리고 참! 인민군은 왜 항상 철모를 쓰지 않지요? [귀신 잡는 해병]부터 지금까지 인민군이 철모 쓰고 나온 영화를 본 적이 없다.

 
   
▲ 실미도
인민군 머리통은 쇳떵이인 모양이지요? )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시나리오가 엉망이다. 형제를 이름없이 스러져간 비장한 영웅으로 그려내려고 순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대사도 딱딱하고 장광설이 많았으며 욕설도 리얼하지 못했다. 형제의 고난과 슬픔을 강요하였고, 전쟁의 참혹함도 강요하였다. 전쟁이 낳은 처참한 살육과 울부짖는 헤어짐이 전혀 분노스럽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도통 영화 안으로 빨려들질 않는다. 그래서 5년 전의 [쉬리]보다 뒤떨어진 영화이다.

우리는 무명인에게 너무 무심하고 유명인에게 너무 유심한 것 같다. 무명감독의 좋은 작품은 도무지 힘을 펴지 못한다. 유명감독의 맹한 작품은 냅둬도 난리법석이다. 물론 그게 세상 인심이기도 하고, 이런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설사 세상이 그래서 밉더라도, 1000만명을 모은 영화 그리고 1000만명을 노리는 영화에게, 이렇게 야박하게 굴어도 괜찮은 건지 캥긴다. 그 대중성으로 얻은 유명세에 걸려, 자꾸 뒤돌아보고 되짚어 보며 이야기를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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