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옆 친일파 흉상이..
안중근의사 옆 친일파 흉상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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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과서 왜곡 규탄물결 드높은데/ 어린이대공원 안용백 흉상 "역사왜곡"/ 일본의 교과서 왜곡으로 온 나라가 반일규탄의 물결로 들끓고 있다. 그러나 일본을 규탄하기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광주 어린이대공원의 안용백 흉상이 대표적이다. 제2대 전남도교육감(1964.9.24∼68.9.24)을 역임한 안용백은 일제때 조선총독부 학무국에 근무했고 41년에는 논문을 통해 내선일체를 주장했던 친일파중의 한명인데도 버젓이 흉상이 세우져 있다. 무엇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친일파 안용백의 흉상 바로 옆에는 3.1운동 기념탑과 안중근 의사 순의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안용백 누구인가> 조선총독부 학무국 근무시절 내선일체 주장 논문 발표 김영삼씨 스승, 자유당 부정선거 닭죽사건 장본인 제2대 전남도교육감 역임 '미고안실'애향운동 펼치기도 봄, 가을에는 초·중·고생들의 소풍장소로, 휴일에는 가족나들이 장소로, 2년에 한번씩은 세계적인 미술행사인 비엔날레가 열리는 어린이대공원에 이처럼 역사를 모독하는 상황이 버젓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나 부모들과 함께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아이들이 안중근 의사와 3.1운동기념탑을 공부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바로 옆 안용백의 흉상앞에 서서 거기에 새겨진 글만 보고 그를 기념한다고 생각해 보면 사실 우리에게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먼나라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실제로 흉상 좌우에 새겨진 바에 따르면 안용백은 "아름다운 인간관계 형성은 말씨와 예절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치셨고 어릴때부터 사람을 존중하고 우애의 정을 표시하는 인간성을 생활화하기 위해 '미고안실 운동'을 전개하였으니 얼마나 사람의 근본을 바로 보고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졌는가"라고 쓰고 있다. 여기서 '미고안실'은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실례했습니다'. 이어 "190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안용백은 경성제국대학 윤리과를 졸업하고 일찍이 조선철학회를 조직하였고 경남 하동군수를 지내고 조국광복이 되던 해에는 관력이 있는 사람치고 정치일선에 뛰어들지 않고 경남중고등학교 초대 교장직을 위시로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전남교육위원회 교육감 등을 역임하면서 후학을 길러내는데 일생을 바쳤다. 또 정년퇴임이후 1977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그대로 광주에 눌러앉아 삼락회 등 애향운동에 남은 열정을 쏟은 호남인으로 충의로서 나라에 몸바쳤고 정열로서 고향을 사랑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흉상 어디에도 안용백이 일제때 조선총독부에 15년여동안 근무했고 무엇보다 1941년 논문까지 발표하며 내선일체를 주장했다는 기록은 없다. 실제로 안용백은 1941년 1월호 '조선'에 '竹山龍伯'이란 창씨명으로 발표한 '유도정신 진흥의 의의'란 글에서 40년 7월 제2차 일본 근위내각이 동아시아에서 일본중심의 국제질서를 확고히 하기 위해 국책으로 천명한 동아신질서 방침 및 신체제운동에 부응하는 내선일체를 주장했다. 지난 87년 실천문학사가 펴낸 '친일논설선집'(임종국 편저)에 소개된 이글에서 안씨는 "조선의 유도는 여러 원인으로 위미부진(萎 不振 : 시들고 약해져서 떨쳐 일어나지 못함)에 빠져있었다"라고 평가한 뒤 "일본 고유의 일본정신 안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면서 살아온 유도정신을 진흥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일본정신 체득과 유도정신 진흥은 일원화되고 내선일체의 촉진으로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씨는 또 일제의 교육이념으로 천명된 교육칙어에 대해서도 "국민덕교로서 천년동안 변함없는 경전"이라고 규정한 뒤 "일본고유의 정신과 혼화된 유도정신의 진흥은 곧 국민의식의 함양이며 내선일체의 촉진"이라고 주장하였고, 글의 마지막부분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는 일본 유학자를 향사자로 모실 것과 향교에서 일본어 강습회나 유도원리의 일본정신적 해석, 일본유학에 대한 연구 등을 강화할 것을 제시하기도 했다. 안용백은 해방직후 경남중고 교장으로 재직시에는 소년 김영삼의 진로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김영삼씨는 대통령재직시인 95년 5월 13일 한 초등학교에 일일교사로 수업을 하다 "정치가가 되기 위해 정치학과를 지망하려했으나 학문중 학문이 철학이라는 경남중학 다닐 때 안용백 교장선생님의 말이 기억에서 떠나지 않아 철학과를 가게됐다"고 회고한 바 있다. 한국정치사에서도 안용백은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치욕적인 사건이다. 바로 '닭죽사건'. 안용백은 58년 5월20일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고향인 보성에서 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8천표차이로 신승했으나 개표과정에서 야식으로 끓인 닭죽에 수면제를 타서 야당후보 참관인들을 잠들게 한뒤 야당 후보표를 빼돌려 불에 태우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쇄소에서 찍어온 위조 투표용지 여당후보란에 붓뚜껑을 찍는 부정을 저지른 것이다. 당시 외신에도 보도된 이 사건으로 안용복은 선거소송에 휘말렸고 결국 대법원에서 선거무효판결을 받아 국회의원명부록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아픈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된다고 했던가. 이같은 차원에서 안용백은 두고두고 기억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물론 안용백은 교육자로서, 활발한 애향운동 등은 지역사회의 훌륭한 어른중의 한명으로 평가받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렇더라도 적어도 흉상에 '세탁'된 업적만이 아닌 친일행각과 부정선거 관련 이야기도 함께 기록돼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친일파 인사와 항일운동을 한 안중근의사와 나란히 서 있는 것만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한편 지난 93년 4월23일 광주시의회 제23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 당시 정태성의원(현 광주시도시공사 사장)은 "어린이들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어린이대공원에 친일행각에 대해 여론이 일고 있는 안용백의 흉상을 그대로 두는 것은 역사를 모독하는 것이며 두고두고 후세에게 부끄러운 일이고, 광주시민의 명예를 해치는 일이므로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당시 강영기 광주시장은 "흉상은 82년 3월에 세워졌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어떠한 이유로 어떠한 경위를 거쳐 안치됐는지 기록을 찾지 못했다"며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알아보겠고 금후 처리문제에 관해서도 (교육청 등과)충분한 협의를 해서 신중하게 처리하겠다"고 답변했지만 아직까지 그대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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