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친구
영화읽기-친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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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 그들의 청춘시절에 바친다// 내게는 부산 친구들이 몇 명 있다. 그 중, 인터넷으로 서로 메일을 주고받다 의기투합, 불원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광주까지 달려와 얼굴을 확인했던 사랑스런 후배가 한 명 있는데, 그 애는 '영화광'이다. 그 애도 나도 영화라면 사족을 못쓰는 처지. 우리 둘은 전화통만 붙잡으면 영화얘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는데, 시네마 키드인 그 애를 요 근래 최고로 행복하게 해준 영화가 바로 '친구'와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다. 아시다시피 '친구'는 부산에서 올 로케한 한국영화고, '부에나비스타…'는 빔 벤더스가 쿠바음악에 바치는 예배 같은 영화로 쿠바의 미항 하바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뭘 먼저 볼까 고민하다가 '친구'(곽경택 감독)를 선택했다. 이유는 단 하나, 여태껏 이 지면에 소개한 영화가 공교롭게도 전부 외국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후배는 '친구'를 보겠다는 나에게,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한시간 가까이, 그야말로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다. 태어나서 딱 세 번 가본 적이 있을 뿐인 나에게 부산이라는 곳은 자갈치 시장의 왁자한 사투리와 너무나도 선명해서 아찔했던 태종대의 바다색, 그리고 최민식의 1950년대 흑백사진 속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 아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산이 아름다운 도시"라는 말을 나는 쉬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후배의 말은 사실이었다. 부산은 낮과 밤 모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질 좋은(?) 히로뽕을 거래하는 밀수꾼들과 생선장수들과 껄렁한 양아치와 사시미칼을 품은 깡패들로 득시글대는 부산의 낮은 고단하고 처절했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다. 부산의 밤 또한 아름다웠다. 동수와 준석이 바라보던 부산의 야경은 오징어잡이 배들에서 흘러나오는 휘황한 불빛과 생활보호대상자들이 사는 판잣집의 깜빡이는 빛들로,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영주동 산복도로 어느 옥상에서 내려다보던 아름다운 밤풍경을 보며, 나는 엉뚱하게도 그날 아침 라디오 FM에서 들었던 말을 기억해 냈다. "봄날의 노을이 유난히 선명하고 아름다운 것은, 먼지 때문"이라던.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장동건이 얼굴만 반듯한 배우가 아니고 진짜 배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잘생긴 배우는 좋은 배우는 못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배우란 모름지기 어느 한구석이 모자란 듯해야 관객이 그 배우의 얼굴에 미혹되지 않고 전체 줄거리를 따라잡아 감동 받을 수 있다는 뜻일 터이다. 그런데, 누가 뭐래도 "잘생긴" 남자 장동건은 '친구'에서 그 등식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렸다. 내가 드나드는 인터넷 커뮤니티엔 "장사모"라는 게 있다. 풀어쓰자면 "장동건을 사랑하는 아줌마들의 모임"이다. 평소에 웃기는 짬뽕 같이 보이기만 하던 이 모임에 은근히 관심이 가 진다. 이 원고를 넘기는 즉시 나는 "장사모"에 들어가 회원가입을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까지 든다. 또 한명의 친구, 유오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간첩 리철진'에서 뒤로 발랑 넘어지게 꺼벙한 간첩 역을 맡았던 유오성의 못생긴 얼굴이야 온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그가 킬링타임용 코미디영화의 반짝 스타가 아니고, 연기파 배우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유오성이여, 롱런하라! 트위스트 김은 그토록 열악한 신체조건으로도 7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건재하지 않은가 말이다!(최근 어느 악극에서 본 그이의 트위스트는 이 아줌마의 숨을 막히게 했다.) 유오성의 극중 주민등록번호는 64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친구'는 교복세대를 겨냥한, 소독약차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을 개 패듯 하는 선생님에게 억눌려 찍소리 한번 못하고 학생시절을 보낸 적 있는 세대를 위한 영화인 것이다.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 없는" 친구였다. 그리고 폭풍의 시절이 지난 지금, 학교를 박차고 깡패가 되었던 두 명의 친구는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다. 턱턱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던 청춘의 시절을 보낸 기억이 있는 이들이여. '친구'를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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