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긍정의 정치를 기대하며
[투데이오늘]긍정의 정치를 기대하며
  • 최정기
  • 승인 2004.01.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정기[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요즈음 총선이 다가오면서 선거와 관련된 여러 가지 소식들이 뉴스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그중 시민단체들이 선거에 대응하는 자세와 관련된 기사들이 필자의 눈길을 끈다.

시민단체가 다종다양한 만큼 선거에 임하는 대응형태 역시 매우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당선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입장과 낙천·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입장, 시민단체 구성원이 직접 후보자로 출마하겠다는 입장, 그리고 별다른 개입없이 구성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입장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어떠한 입장을 취하든 나름대로의 판단근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족한 것일까? 사회운동 조직이나 시민운동 단체들이 모두 선거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것은 아닐까? 이들이 해야할 보다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을까?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뀐 지난 15년의 경험, 그리고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 지방자치제의 모습은 우리에게 충분히 교훈적이다.

즉 사회운동이라는 측면에서도 선거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전술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선거에만 얽매일 경우 오히려 사회운동 조직 자체가 붕괴될 위험도 있다. 지방자치제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이 아니라 ‘풀뿌리 뽑는 민주주의’라는 비아냥은 선거가 갖는 그러한 위험성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시민진영의 과도한 선거에의 관심

인류가 만들어낸 제도중 선거제도만큼 사회를 변화시킨 것도 드물다.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선거제도를 통해 대의제에 토대를 둔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 이제 인류사회에서 소수에 의한 지배는 점차 힘을 잃고, 다수에 의한 지배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다른 한편 선거제도를 통해 구성된 권력이 반드시 전국민을 대표하는 것인지, 나아가 그것이 정의로운 정치체제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선거제도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선거를 통해 제시된 몇 가지의 선택지가 일반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선거보다는 공동체 건설 등 국가 외부의 정치를 중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선거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러한 현상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1980년대 중반까지 권위주의적인 정권의 지배하에 있었던 우리나라는 공정한 선거의 시행과 그것을 통한 정부의 구성 자체가 역사의 진전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당시 직접선거는 민주주의와 동의어였으며, 공정한 선거만 치뤄지면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선거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네 번이나 정부를 구성해 본 경험이 있는 오늘날 그와 같은 생각이 매우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한 선거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환상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선거를 통해 역사의 진전이 이룩될 수 있는 시기는 국민적 수준에서 ‘악’으로 규정된 권위주의 권력이 존재할 때이다. 이럴 때는 그에 대한 반대와 공정한 선거에 대한 요구만으로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새 제도와 관행 만드는 일도 중요

절차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오늘날에는 반대할 만한 권위적인 권력은 없다. 이런 시기에 누구누구를 반대하거나 스스로 정치적 경쟁에 뛰어드는 것만으로는 의미를 갖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일상에 녹아있는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권력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제도와 관행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긍정의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선거 역시 이러한 사고의 연장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시민단체들이 선거에 대응하여 보이고 있는 모습은 긍정의 정치일까? 아니면 스스로가 기존의 정치세력을 닮아가는 것일까? 그 답은 가까운 시일안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정기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새해 칼럼 'today 오늘'에 참여한 최정기교수(45)는 전남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기획담당관을 역임한 뒤 현재 전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