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새로운 앨범 갖고 싶어요
이젠 새로운 앨범 갖고 싶어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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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까지 수십년째 틀에 박힌 편집/ /사진앨범조합 독과점 일방적인 제작/ /일부학교 졸업문집, CD앨범 제작 호응/ 계약방식 선정부터 제작과정 개선돼야// 학창시절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졸업앨범. 누구나 집안 한 켠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소장품이다. 그러나 이들 앨범을 들여다보면 흑백의 까까머리 아버지부터 칼라로 변한 아들, 조카에 이르기까지 천편일률적이다. 박제된 얼굴들, 똑같은 폼의 단체사진, 근엄한 선생님 모습, 그리고 알아볼 수 없는 소풍, 운동회, 수학여행들이 항상 그 자리에 딱딱하게 편집돼 있다. 세대마다 다른 개성과 특징은 찾아볼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수 십년동안 소수의 사진인쇄앨범협동조합업체들이 졸업앨범을 독과점 해오면서 학부모, 학생, 교사의 참여 없이 일방적으로 제작돼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앨범계약을 둘러싼 업자와 학교간의 뒷거래도 오래된 일선학교의 병폐로 질 낮은 앨범을 양산하고 있는 원인이다. 최근 광주지역에서는 참교육학부모회 광주지부가 지난 18일에 '새로운 졸업앨범 전시회'를 열자 일선 학교운영위원회와 일선 교사들도 '새로운 앨범 만들기 운동'에 적극 관심을 보이면서 신학기 교육현장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 운동은 아이들이 남기고 싶은 학창시절 추억을 담을 앨범 등 졸업기념집을 제작업체 선정에서부터 편집까지 학부모 교사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만들자는 취지다. 학생들의 개성이 묻어나는 앨범, 동영상 CD, 졸업문집 등이 그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다. 광주지역 일부 학교에서도 좋은 사례가 이어져 오고 있다. 광주남초등학교는 교사들이 앞장서 지난 98년 2월 제50회 졸업기념으로 '아이들과 함께 만든 정감어린 졸업기념문집'을 내놓아 신선함을 던져 주었다. 당시 기념문집 제작에 참가했던 김선영 교사는 지난 4월 14일 참교육학부모회 주최 사례발표에서 "앨범 제작업자들의 담합과 횡포가 극심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협정가격이란 걸 치르면서 구태의연한 앨범을 만들어 왔다"며 "뜻있는 교사들이 똘똘 뭉쳐 졸업생 제자들에게 보다 의미있는 선물을 주기위해 학교장의 저지, 업자들의 농간을 헤쳐가며 문집을 만들었다"고 문집발행 의의와 과정상 어려움을 글로 밝혀 놓고 있다. 이 학교는 9명의 교사들이 앞장선 결과 졸업생들에게 70면 4만원 앨범대신 2만원으로 250쪽짜리 추억의 졸업문집을 안겨줄 수 있었다. 물론 학부모 학생들의 반응은 너무나 좋았었다고 한다. 김교사는 "학부모 여론조사를 통해 대다수의 학부모가 문집 발간을 원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제작업체를 공개입찰로 선정, 교사와 학생이 공동으로 참여해 아이들이 직접 쓴 글과 사진을 모아 업자를 통해 졸업문집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광주일동초등학교도 지난해 학부모들이 적극 나서 '앨범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형태의 앨범으로 바꿨다. 올해 처음으로 만든 이 학교 앨범은 32면에 표지를 인조가죽으로 씌어 고급스러워졌다. 큰 앨범크기에 학급면 편집은 딱딱한 급훈대신 담임 선생님의 '사랑의 글'을 넣어 교사와 학생간의 정을 듬뿍 담았다. 사진도 학생회의, 행사 등을 최대한 많이 넣어 추억거리를 많이 담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나 새 앨범이 나오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지난해 학교운영위원으로서 새 앨범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미경씨(36)는 "2001년도 첫 회 졸업생인 만큼 뜻있는 앨범을 만들기로 하고 '공개경쟁입찰'로 업체를 선정키로 했다. 그러나 학교장의 반대로 '수의계약'으로 변경해 조합원 업체와 수차례 의견조율을 했으나 '조달청 사양 외에는 불가능함'을 듣고 직접 일반업자를 선정 기존업자보다 1만원이 적은 3만5천원에 원하는 앨범을 만들 수 있었 다"고 밝혔다. 이씨는 "제작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사진앨범인쇄협동조합의 엄청난 조직력과 맞서야 했던 것"이라고 밝혀 앨범조합의 횡포를 지적했다. 올해 광주운남초등학교 345명의 졸업생들도 큰 앨범 겉표지에 자기의 얼굴사진이 들어 있는 앨범을 받아들고 색다른 기쁨을 맛보았다. 올해 이 학교를 졸업한 모미령(13·금구중학교 1년)양은 "앨범 앞 표지에 내 얼굴이 들어있고 우리반을 소개하는 첫 장에 선생님의 글이 실려 있어서 무척 기뻤다"며 "지금도 가끔씩 사진앨범과 CD를 통해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고 달라진 앨범에 대한 친근함을 말했다. 이준열 운남초교 운영위원장은 "천편일률적인 앨범에 문제점을 던진 학부모들이 개선안을 내놓고 학교측을 설득한 결과 조달청 고시 가격보다 저렴하게 예전과 다른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앨범제작에 참여했던 정혜인 학교운영위원은 "11월 중순에야 앨범계약을 마치고 편집을 서두른 탓에 부문적인 개편에 그친 것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해마다 2∼4월경에 앨범 제작업체를 선정하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교사, 학생, 학부모가 공동으로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밖에 광주염주초등학교는 지난해 CD앨범을 제작하여 아이들의 인기를 받았다. 참교육 학부모회는 전국적으로 약 30여학교에서 새로운 앨범과 졸업문집이 모범적으로 제작되면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참교육학부모회 광주지부 이희한 정책실장은 "다양한 졸업기념집 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학부모와 아이들이 원하는 매체를 저비용 고품질에 공동으로 제작하는 것"이라며 "학교운영위원들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교육청의 불간섭, 일선 학교장들의 소신있는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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