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이름값-살길은 있다 <노인수 변호사>
가혹한 이름값-살길은 있다 <노인수 변호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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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배모씨에 대한 기사가 '시민의 소리'란 신문에 났습니다. 그녀는 이미 광주지방검찰청 게시판에 피해 구제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남겨 놓고 있었습니다. 이제 27살의 미혼 여성, 3년전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일자릴 전전하다 '진도 유망한 부동산컨설팅 사장님에게 스카웃되어' 신용불량자인 사장님을 위해 대출 명의를 빌려주었다가 현재 원금만 3억원에 이를 정도의 신용불량자가 된 여자. 뭔가 도움을 줄 일이 있을까 해서 본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기도 하고 법률상 어떤 방안이 있을까 여러각도로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결과 마지막으로 남은 생각은 '이름값'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배씨 사건의 핵심은 과연 그녀가 사기 피해자로 보호받을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 형법상 사기는 가해자가 차용금 등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이 돈을 빌릴 때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부동산 사장이 당시 은행 대출금에 대해 갚을 의사나 적어도 변제기에 변제할 능력이 있었느냐 여부인데 메시지상 '원금은커녕 이자도 3번밖에 내지' 않았고 액수도 수억원에 이른다면 일단 사기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은행직원의 사기죄 공범이 가능성 여부입니다. 만약 은행직원이 부동산 사장과 짜고 동인이 변제능력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대출을 받게 하였고 이 때 차주나 연대보증인 형식으로 배모씨를 이용하였다면 사기죄가 성립되고 이 때 동인은 피해자로서 피해 구제를 받을 여지도 있습니다. 또한 민법상 '기망에 의한 의사표시'로서 원천적으로 대출행위자체를 취소하여 책임을 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은행측에서 규정 이행을 다하였고 주장하고 증거를 제출한다면 이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채권자측의 과실 문제입니다. 부동산 사장이 제시하는 담보 가격이 차용금에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은행의 일반 대출 규정 등에 비해 현저한 잘못이 있으며 차용금 변제 과정에서 은행이 좀 더 서둘렀다면 부동산 사장 소유 재산에서 좀 더 많은 변제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를 게을리 하는 바람에 책임을 더 크게 지거나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이를 주장하여 인정받아 책임의 상담 부분을 감면받을 수도 있고 조정에 회부하여 당사자 사이의 형평을 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통상의 예에 비추어 배모씨가 남이 돈을 빌리는데 부동산 사장의 사후 변제능력 여부를 떠나 차용인으로서 이름을 쓰고 도장을 날인하여 주었다면 민사상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선 부동산 사장을 상대로 사기죄 등으로 고소하여 그로부터 피해 변제를 받을 방안을 생각하고 이미 은행측에서 걸려온 대여금청구 고소에 대하여는 그간의 사정을 정확히 말씀드리고 증거들을 잘 제출하여 보호받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름을 인정상 쓴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인생을 절망하고 포기하기에는 아까우므로 지혜롭게 처신하고 시간이 가면 해결될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물정에 어리둥절하면서 어디서 직장 다닌다고 밝히기를 꺼려하는 그 처녀같은 사람들이 우리 주위 어딘가에 또 숨죽이고 살고 있지 않느냐 하는 안타까움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지난13일자 본보 '감옥에라도 가면 3억빚이 없어질까요' 기사와 관련, 기고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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