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다른 병원이야?
이래도 다른 병원이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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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동광주병원 진료기록/ 광주병원서 버젓이 사용/ 의료법상 불법, 상법상 영업양도에 해당/ 해고 근로자 고용승계 다툼 최대쟁점될듯/ 동광주병원사태가 장기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자체 보관돼 있어야 할 환자들의 진료기록이 광주병원으로 넘어가 버젓이 불법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광주병원의 동광주병원 직원들에 대한 법적 고용승계의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고 조합원들의 고용승계 다툼과 관련,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동광주병원과 진료기록 똑같아> 최근 광주병원에 들른 김옥진씨(여·56·광주시 북구 우산동)는 처방전을 받아 보고 의아해 했다. 올해 개업한 병원이라 자신의 처방전도 새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여겼는데 이미 폐업한 동광주병원의 처방전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 김씨의 경우 지난해 11월 10일 동광주병원에서 받은 처방전과 올해 2월 28일 광주병원에서 발급한 처방전의 병록번호가 모두 '97385546'번으로 똑같았으며, 처방의사 또한 동일인물이었다. 김씨는 "광주병원측에 과거 동광주병원때의 검사기록 차트를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처방전이 병원 이름을 빼고는 똑같았다"며 "간판만 바뀌었지 의사와 병원건물은 물론 처방전도 같다면 똑같은 병원 아니냐"고 말했다. 이후승씨(33·광주시 북구 문흥동)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씨는 동광주병원 영업당시인 지난해 12월 19일 처방전을 받은 뒤 올초 새로 문을 연 광주병원에서 지난 2월 20일 다시 처방전을 받았으나 역시 병록번호(99120304)와 진료의사가 똑같았다. <처방전.병록번호.처방의사 동일> 실제 광주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과 병원 앞 약국에서 확인한 광주병원의 처방전은 병록번호가 '96××××××', '97××××××'…. 등으로 동광주병원에서 사용하던 처방전의 병록번호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병록번호란 환자가 병원을 처음 방문해 진료기록부를 만들때 부여되는 개별 환자의 고유넘버로 맨 앞 두자릿수는 연도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광주병원의 경우 지난해 말 폐업한 동광주병원의 건물과 시설을 임대해 올해 2월부터 개업했으므로 광주병원의 모든 진료기록이나 처방전은 2001년을 뜻하는 '01-'로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다. 동광주병원에서 치료한 적이 없는 광주병원 환자들 처방전의 경우 모두 '01××××××'로 시작되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전문가 "명백한 의료법 위반"> 광주병원의 동광주병원측 진료기록 사용에 대해 관계 전문가들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자체 보관하도록 돼 있는 진료차트를 다른 병원이 통째로 가져다 쓸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의료법은 의료기관이 폐업한 때는 진료기록을 관할보건소에 이관하거나, 진료기록의 수량 및 목록·보관장소·보관책임자 등을 기재한 진료기록보관계획서를 제출하여 관할보건소장의 허가를 받아 자체보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따라 지난해 12월 30일자로 폐업한 동광주병원은 폐업과 동시에 광주시 북구보건소에 진료기록 자체보관계획서를 제출했다. 이 계획서에 따르면 신현호 당시 병원장이 총 22만 5천 7백여부에 달하는 진료기록을 보관책임자인 여직원 문영신씨에게 인계, 의무기록실에 자체보관토록 돼 있다. 그런데 이 기록들을 광주병원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병훈 노무사(무등공인노무사)는 "의료법상 의사는 환자의 진료상 필요에 의해 다른 의료기관에 진료기록 등을 열람하거나 송부를 요구하고, 환자 또한 교부를 요구할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복사본에 한정된다"며 "광주병원의 경우는 차트 사본을 송부받아 참고한 것도, 환자들의 요구에 의한 것도 아니고, 병록번호까지 똑같이 사용하는 등 기존 동광주병원의 진료기록을 병원 이름만 바꿔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명백히 의료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의료법은 법령이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환자의 진료기록을 열람시키거나 의료행위로 알거나 얻은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위반시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상법상 영업양도, 고용 승계해야> 광주병원의 진료기록은 동광주병원 해고 조합원들의 고용승계문제를 푸는데 핵심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광주병원은 폐업한 동광주병원과 임대차 계약을 통해 건물과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소유주만 바뀌었을 뿐 의료진도 대부분 동일 인물들이다. 노동조합을 결성해 파업에 가담한 조합원 40여명만 빠진 채 모든 시설과 의료진이 광주병원으로 승계된 것이다. 특히 동광주병원측에 자체보관돼 있어야 할 진료기록을 광주병원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영업을 양도한 것으로 상법상 '포괄승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노무사는 "병원의 3요소를 병원시설과 의료진, 환자기록이라고 했을 때 광주병원은 동광주병원의 3요소 모두를 양수받은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이는 포괄적 승계에 해당하므로 당연히 해고된 조합원들까지 승계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창원특수강과 삼미특수강간의 법적 분쟁에서 찾을 수 있다. 창원특수강은 지난 1997년 삼미특수강의 공장을 자산매매계약을 통해 인수할 당시 고용승계 의무배제 조항을 명기해 근로자 중 일부만 재고용하고 나머지는 정리해고 했다. 이에 대해 삼미특수강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고용승계 중재를 요청했고, 중노위는 "자산매매 당시 고용승계 의무가 배제돼 있더라도 실제로 영업양도가 이뤄졌기 때문에 근로자들을 해고할 수 없다"고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창원특수강은 이 결정에 불복, 소송을 제기해 현재 대법원 계류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광주병원의 경우 노조만 털고 폐업한 후 다시 개업한 경우로 광주병원이 시설만 임대차 했다하더라도 환자기록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면, 사실상 영업양도에 해당하므로 법적으로 재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광주병원측은 일체의 사실확인을 거부하며 "노 코멘트"라는 답변으로만 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동광주병원 노조는 노동위원회에 요청하는 고용승계 중재신청이 시한이 만료돼 불가능하게 됨에 따라 조만간 법원에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거리로 나앉은 동광주병원 조합원들은 오늘도 파업 228일째, 천막농성 109일째 하루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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