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인 줄 알고 사는디…지신 할머니 나좀 도와주소”
“내 집인 줄 알고 사는디…지신 할머니 나좀 도와주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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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촌 아리랑-진곡마을 사람들

"드러눠서도 오메 오메 지신 할머니 나좀 도와조. 하나님네 나좀 도와조. 전라남도는 내 속은 아꺼신디. 어째 나는 이렇고 살아. 저녁에 시 번씩은 했어. 안했다믄 거짓말인디 고렇게 폭폭하게 살았어. 근디 편안하니 내 집인줄 알고 사는디 또 요런 방개가 난게 또 그기가 없어졌제. 그런 말이 없어지고 편안하니 살만한 게 또 이기가 나요."

광주 광산구 진곡동 산 3-21번지. 이곳에는 땅을 갖지 못했으나 땅과 살아가는 법을 아닌 진곡마을 피난민 9가구의 삶터다.
1950년 국가소유 임야였던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의 정착촌이 되었다. 이후 이곳을 등지는 피난민들이 늘자 남은 인근 영세민들이 피난민촌에서 남은 피난민들과 이웃이 되어 살아왔다.

빈 땅 한뼘에라도 마늘씨를 뿌리고, 열무싹을 올라오게 했으며, 버려진 하천부지는 논을 삼아 쌀을 내먹었다. 비록 '이곳이 내땅'이라는 문서는 없었지만 50년이란 세월은 이들과 땅 사이 뜨거운 피가 흐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도 모르는 사이 땅은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사유지로 변했고 이들은 어느 순간 남의 땅 위에 사는 '죄인'이 되어 있었다.

심복순 할머니(71)의 애절한 절규는 여기서 비롯된다. 갑자기 땅주인이 바뀌면서 집을 철거한다는 소리가 뜬 소문으로 들리고 어느날 저녁 갑자기 집 앞 텃밭자리에 콘테이너 박스가 들어섰다. '땅문서' 없는 할머니는 아무 소리 못하고 쫓겨나야 할 판이다. 나머지 마을 사람들도 언제 같은 처지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오직 땅만이 이들의 땀과, 눈물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을 뿐, 아무도 이들의 소리를 귀기울이는 사람이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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