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깨닫지 못한 곳에서 희망을 캐내다
미처 깨닫지 못한 곳에서 희망을 캐내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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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매일 꿈을 꾼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그린다. 여든 아홉의 배움 열정이 그러했고, 어린 꿈나무들의 장애인과 더불어 살기 위한 노력들이 그러했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곳에서 이들은 '희망'을 캐낼 줄 아는 법을 알고 있었다.

배우는 즐거움에 장수하는 하동순 할머니

지난 4일 광주성지노인대학이 첫 졸업식을 치렀다. 3년전 광천동 성지교회에서 운영하기 시작한 이곳이 주목받는 이유는 '개근상' 때문이다. "어르신들이라고 무조건 양보하고 이해하고 떠받들면 오히려 싫어하십니다. 그것은 늙었다는 말 밖에 안되거든요."
노인들의 평생 교육을 위해 노인대학을 설립했지만 여기선 '봐 주는 것' 없다. 3년 과정을 이수하고 올해 첫 졸업식을 거행한 이 대학은 60% 이상 출석한 학생들만 졸업을 허용했다.

"학생들처럼 졸업 시험을 보지 않더라도 성실히 대학에 임한 사람만이 진정한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매학기 '개근상'을 수여하는 등 출석을 제일로 여깁니다." 이에 40여명으로 시작한 노인대학은 올해 1회 졸업생 16명을 배출했다. 이 중 최고령 학생은 89세의 하동순 할머니.
성경학과를 졸업한 할머니는 일주일 중 목요일이 가장 즐겁다. 며느리가 지어준 아침 먹고 8시면 집을 나온다.

"수업은 10시에 시작하는데 일찍 오고 싶어서…. 맨날 배운 거 다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배우곤 하는데 그래도 아직까지 혼자 걸어다닐 수 있어서 그 재미에 나오지." 수업 시간엔 열여섯 소녀가 된 기분인 할머니는 늙은 나이에도 배울 게 있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단다. 이것이 '개근상'의 비결이기도 하다.

©김태성 기자

이번 졸업이 못내 아쉬웠던 할머니는 이번엔 대학원에 도전한다. "대학원 3년 다니면 반장도 할 수 있고 마음껏 봉사활동도 할 수 있어요. 그런 후 평생 수강증을 받게 되지요. 이렇게 하루 하루 배우는 즐거움에 살다보면 100살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듯 할머니는 배움의 열정이 곧 장수의 비결이라 굳게 믿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

장애인 체험으로 밝은 세상 만드는 하남 중앙초교 학생들

©김태성 기자

졸업식 다음날인 5일, 또다른 모습이 차가운 계절을 맞이한 이 세상을 훈훈하게 데우고 있었다. 광주 하남 중앙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몰려 나와 휠체어에 몸을 고정시키고 안대로 눈을 가린다. 이른바 '공동체의 날' 의식. "세계인권선언의 날을 맞이해 학생들이 교과서에 나온 인권 문제를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다고 해서 이 학습을 진행하게 됐어요." 김계영 교사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했던 과정을 높이 평가했다.

바퀴가 달려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휠체어 운전. 평소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T자형 앞에서 휠체어를 움직이는 학생들의 모습은 진지하기만 했다. 또,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낀 날이기도 했다. 1분만 안대를 하고 있어도 그 갑갑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학생들은 시각장애인들의 고통을 잠시나마 느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날 체험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 뿐만 아니라 봉사의 필요성도 절실히 깨닫는 기회가 됐다. 이들은 조별로 준비한 인권에 대한 조사학습 보고회를 통해 사회에서 높낮이 없이 어깨 나란히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게 차별 받을 이유가 아니라는 것, 그들에게도 똑같은 인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들 스스로 나누는 기쁨을 찾게 된 학생들, 덕분에 이날 교문을 나선 아이들의 눈엔 세상이 훨씬 밝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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