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호 [광주대 교수]
신문고시안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주장해 온 언론시장 정상화를 위한 방안들 중에서 공정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반영된 것에
불과합니다.화평형. 봄꽃들의 향연이 온누리를 뒤덮고 있습니다. 산수유, 매화,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목련이 지천으로 피는 봄을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이제 비록 아름답다 할지라도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사쿠라까지 피었다 꽃잎을 떨구고 있습니다. 마침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까지 겹쳐 사쿠라가 사쿠라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는 어설픈 봄입니다.
화평형. 이 세상은 왜 이리도 화평하지 못한지 걱정입니다. 특히 언론계는 세무조사와 불공정거래조사 실시 이후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워요.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7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신문고시에 대하여 일부 신문들이 극력 반대하고 있지요.
기사에다 사설에다 해설, 그리고 새로 만든 미디어면까지 동원하여 신문고시안을 마구 비판하더군요.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을 장악하기 위한 카드'라거나 '타업종과 형평성을 잃은 편파적 처사'라는 식이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 신문들이 정부 손에 장악될 것 같던가요. 그리고 타업종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규제하면서도 언론에 대해서만은 그러지 못했던 것이 이제까지의 현실 아니던가요. 신문고시안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주장해 온 언론시장 정상화를 위한 방안들 중에서 공정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반영된 것에 불과합니다.
신문들 특히나 내로라 하는 큰 신문들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비정상적이고 무질서한 언론시장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터전임을 드러내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거대 신문사에 근무하는 한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꿈을 꾸었죠. 거대신문들이 이런저런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속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아마 이럴 겁니다. 지금의 신문시장은 가장 이상적인 시장이고, 신문고시는 그런 정상가동하고 있는 시장을 붕괴시키는 반시장적 행위라는 것입니다.
거대 신문사들은 최대한의 경품을 제공함으로써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약한 신문들을 과도한 경품제공으로 유인하고, 결국 그들의 경영을 압박하고 퇴출시키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신문을 꼭 돈 받고 팔 것이 아니라 무가지도 20퍼센트다 하는 제한 없이 충분히 찍어서 손닿는대로 돌려야만 새로운 독자들을 무제한 확보할 수 있지요.
남는 신문 어떻게 하냐구요?. 간단하죠. 풀려면 인건비 드니까 묶음채로 쓰레기장으로 보내는 거죠. 새로운 독자를 확보하는 방법이 있지요. 신문고시안은 7일로 강제투입기간을 정하고 있지만 그래서야 어떻게 영업활동 할 수 있습니까. 몇날며칠이고 무가지를 강제투입하는 겁니다. 한두달씩 게릴라식으로 신문을 넣고 적당한 때가 되면 신문대금 받으러 가는거죠.
안내겠다고 하는 독자들은 한마디로 나쁜 사람들이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먹어도 돈 내야 하는데 비싼 신문 봐놓고 신문대금 떼어먹으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는 거죠.
상대방이 기분 나쁘건 말건 우리 뱃속만 채우면 되는 것 아닙니까. 신문 끊겠다고 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들 혼내주는 방법도 다양하지요. 어떻게 확보한 독자인데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신문을 끊어줍니까.
왜 공정거래위원회인지 뭔지 하는 것이 나서서 이런 신나는 일을 못하게 하느냐는 거죠. 세상은 어차피 약육강식의 논리가 관철되는 세상 아니던가요. 신문고시 내용 중 광고와 관련해서 이상한 규정을 만들었더군요. 콧대 높은 광고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건지 어쩐지 신문고시는 찍자마자 폐기한 신문을 신문부수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것은 말도 안됩니다.
일단 인쇄했으면 신문이지요. 독자들이 보건 말건 우리가 쓰레기장으로 보내건 말건 우리가 우기고 광고주가 인정해주면 되는거지 그걸 불공정거래라고 규제를 하다니요. 광고주 허락없이 광고를 게재하면 그게 뭐가 나쁩니까. 광고를 통해 영업활동을 확장하도록 회사를 돕고 광고비는 나중에 사정 좋아지면 받는다는 거지요.
누이좋고 매부좋고 하는 일인데 왜 그걸 금지하려는건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좋은 일이면 약간 무리가 있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가끔씩 사전허락 받지 않고 광고 게재했다고 광고료 지불 못하겠다고 버티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렇게 광고료 떼어 먹으려 하는 광고주들은 비리를 캐어 신문에다 확 깐다고 하면 돈 안내겠습니까.
광고가 있었으니 당연히 광고료 지불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신문고시는 그런 일도 못하게 하더군요. 신문고시는 광고단가도 규제를 하더군요. 우리가 광고단가를 높게 책정하건 말건 왜 상관을 하는 겁니까.
높으면 안팔릴 거 아니예요. 우리가 받을만 하니까 받고 광고주들도 줄만 하니까 주는거지요. 이렇게 신문 판매와 광고를 맘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지요. 언론자유를 어떤 사람들은 국민의 자유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냥 하는 말 아닙니까.
실제로는 신문사 주인이 언론자유의 주체 아닙니까. 우리같은 종사자들은 주인 덕에 나팔 부는 거지요. 신문사 주인이 누굽니까. 당신 우리 신문사 주식 한 주라도 갖고 있어요? 왜 남의 회사 일에 배놓아라 감놓아라 하는 겁니까.
주제 넘게스리. 일부에서는 여론독점 얘기도 하더군요. 세상에 너무 많은 의견들이 있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 선택하기가 너무 어렵지 않던가요. 우리 힘센 신문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한 목소리를 내주면 독자들도 혼란스럽지 않고 우리나라도 편안해지지 않겠어요.
몇몇 신문들이 여론을 독점해서 통일이나 민주주의 같은 얘기들이 함부로 여론으로 자리잡지 못하도록 만들어야만 하지요. 화평형. 저는 이런 꿈을 꾸다가 소스라쳐 일어나고 말았답니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그들만의 세상이지요.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느끼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 그들만의 잔치판이지요. 아 나는 그런 세상이 싫어요.
/류한호 [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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