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풀고 입은 묶고'…정치신인은 ‘괴로워’
'돈은 풀고 입은 묶고'…정치신인은 ‘괴로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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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을 겨냥해 선거전에 뛰어든 정치신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이다. 정치가 ‘돈’을 중심으로 돌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선거에 관한 한 철저히 이중의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돈 선거’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내보이다가도 후보자들을 만나면 돈이 얼마나 준비됐는지를 묻는 것이 상례다.

광주 북구을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21세기평화문제 연구소 최경주 이사장은 “돈 없이는 사람들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며 “과거 군사정권 시절 정치철학과 신념에 따라 헌신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던 것은 이제 먼 옛날의 얘기가 되 버렸다”고 씁쓸해 했다.

최 이사장은 또 “광주 북을 지역구에서는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진 J씨의 출마여부가 선거브로커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라고 밝히고 “이는 그만큼 뜯어먹을 것이 많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동구지역 선거운동원들 사이에서도 이번 총선에서 몇몇 후보가 ‘30억원’을 쓸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들은 동구의 경우 2만5천표에서 2만8천표를 얻으면 당선권이라는 구체적인 분석을 토대로 그 같은 액수가 책정됐다고 밝혀 소문이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 아님을 뒷받침했다.

그러다 보니 ‘표 줄게 돈다오’를 외치는 정치브로커들이 제철을 만났다. 이들은 선거철만 되면 ‘철새’처럼 이곳 저곳 ‘돈’을 찾아 둥지를 옮긴다. 게 중에는 나름대로 정치철학과 신념에 따라 소신 있는 유급 선거운동원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돈과 자리’를 찾아 양지만 추구하는 ‘선거철새’들이다.

이쯤 되면 앞으로 ‘선거브로커’도 유망 신종직업군으로 명함을 내밀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옛날 ‘막걸리 한잔’얻어먹고 선거운동 하고‘고무신’받아 표 찍던 것은 차라리 애교쯤에 해당된다고 해야하는 걸까.

‘표 줄게 돈 다오’ 돈·자리 찾아 선거브로커 행각 극성
후보자 검증 ‘예비경선’이 오히려 ‘돈먹는 하마’ 둔갑
현역의원 일방유리 선거법 개정 ‘돈은 묶고 입은 풀어야’


금전적 이해관계나 학연·지연·혈연 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국 정치현실의 부끄러운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순수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것이 희귀한 천연기념물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우스갯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 동구 지구당 김경천 의원도 지난 총선에서 자원봉사자를 썼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김 의원은 “자원봉사들이 찾아와 돈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총선이 끝난 후 자원봉사자를 쓰고도 돈을 떼어먹었다는 뒷소문에 한동안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후보자 검증을 통해 경쟁력 있는 인물을 선별하자는 취지의 ‘예비경선’도 정치신인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오히려 ‘예선’과 ‘본선’이라는 이중의 지출을 강요하는 ‘돈 먹는 하마’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할 듯 싶다.

민주당 동구경선을 준비중인 평화개혁포럼 구해우 대표는 “민주당의 현행 경선방식이 현역위원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식”이라며 “유권자의 1%로만 경선을 하게되면 돈경선·조직경선이 판을 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선에 참여하는 대의원 숫자가 적을수록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사람이 유리할 것이라는 진단인 셈이다. 후보자들이 서로 다른 ‘출발선’에 서있다는 사실을 묵인한 채 진행되는 현행 경선제도가 이미 ‘불공정 경선’을 내포하고 있다는 항변인 셈이다. 이 때문에 경선 과정에서 예고된 돌발변수를 예측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지난 6·13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예비경선은 그 살아있는 표본이다.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일관하다보면 결과에 따라 ‘본선’에 이르기도 전에 ‘예선’에서 만신창이로 ‘일’을 치르고 ‘쇠고랑’을 차는 사태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내년 총선은 정치권에게 정치개혁을 이룰 절호의 기회이자 동반 몰락할 수 있는 위기의 양날인 셈이다.

이에 대해 동구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양형일 중앙의원은 “중앙당에서 지역구 의석의 30%를 영입인사 몫으로 배려하고 있지만 페어플레이가 보장된다면 경선을 회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그렇지만 동원식 경선이나 본선 경쟁력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네거티브 경선이 된다면 재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사고지구당인 서구와 북구을의 경우는 조직책 공모신청 대상자를 중심으로 ‘예비경선’을 해야 하는데 현재 당원명부가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경선이 당원모집과 세 과시를 위한 ‘동원정치’의 장으로 전락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경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민주당 중앙당에서는 여론조사를 하나의 유력한 방안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정치신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인지도 조사가 아닌 선호도 조사”를 합창하고 있다. 인지도를 조사하게 되면 정치신인들의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것. 이와 함께 현역의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된 선거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입지자들도 많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정치신인들은 ‘명함’하나도 제대로 돌릴 수 없어 후보자를 알릴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는 것이다. ‘돈은 묶고 입은 풀라’는 정치초년생들의 호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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