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고 목숨 잃어도 '할 말 없는' 사람들
다치고 목숨 잃어도 '할 말 없는' 사람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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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코리아'가 한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프리티 수리순 톤씨(Preeti Srisoon torn·25)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짐을 꾸렸다. 잠시만 고생하면 부모와 가족 모두 편히 살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친구들과 함께 고향 태국을 떠났다.
그가 도착한 곳은 광주 광산구 장롱동에 위치한 가전부품 제조공장. 80여명이 일하는 이 공장에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수많은 한국인을 제치고 작업팀장을 맡을 정도로 성실한 직원이었다. 산업연수생 신분이라 그리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최소한의 생활비만 떼고 나머지는 모두 태국 집으로 보냈던 프리티.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18일 오전 11시 23분께 금형프레스 작업 도중 금형판 사이에 머리가 끼면서 그 자리에서 압사됐다. 경찰 조사 결과 본인 과실에 의한 사고로 밝혀져 경찰은 회사 측에 유족과 합의해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지시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인권보호단체들은 과실사의 주체가 외국인 노동자인 경우 다른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근로조건이 열악해 국내 근로자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3D 업종에 종사하는 데다 언어 소통이 잘 안돼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 18일 태국 산업연수생 작업 도중 압사…경찰 "과실사"
인권단체 "위험 수위 높은 3D 업종…개인만의 탓 아니다"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이철우 목사도 "이번 사건이 개인 과실사라고 매듭짓기 힘들다"고 지적하며 "산업 연수생들의 안전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는 회사나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주장했다.
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급증하고 있다. 사망자 수도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98년부터 현재까지 공식 집계된 사망자가 150여명에 이른다. 이에 알려지지 않은 불법 체류자들의 피해까지 감안하면 그 숫자는 몇 배로 커진다.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은 금속제품제조 또는 금속가공업, 화학제품 제조업, 섬유 또는 섬유제품 제조업, 건설업 등 4개 업종이다. 이들 중 80% 정도가 50명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 몰려 있으며, 재해별로는 프리티씨처럼 협착(기계 기구 등에 신체 일부가 끼는 것)이 61.6%로 월등히 많았다. 이 중에는 기계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도 종종 있다.
그러나 죽은 프리티를 대신해 항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1일 현재 프리티씨의 유족들은 비자발급이 늦어져 한국에 오지 못한 상황. 유족들이 조만간 도착한다 할지라도 이들은 프리티가 개인 과실로 사망했다는 전제 하에 보상금 합의와 장례를 치러야 한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 체육대회에서 ©김태성 기자

경찰을 통해 사고소식을 접한 주한 태국 대사관 측도 프리티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대사관 관계자는 "우리가 일일이 사건을 검토할 여유가 없다. 우리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을 경우 조사에 직접 합류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보고만 받고 서류를 처리한다"며 유족들이 한국에 올지라도 동행은 무리라는 입장을 보였다.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측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센터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만 우리는 언론을 통해 사망 소식을 접할 정도로 정보 수집이 어려운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목숨을 잃었음에도 누구 하나 나서주지 않는 상황이기에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은 신체 일부가 다치는 정도의 사고는 '팔자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소통 안되고 한국법 몰라 '아프면 아픈대로' 사는 노동자들

이란에서 연수생으로 온 마르한씨(32)는 6개월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작업 도중 오른손 일부가 잘리는 사고를 당해 네 번에 걸쳐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 도중 의료사고가 발생, 마르한씨는 서울 병원으로 이동해 세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항의 한마디 할 수 없다. 오히려 "6개월 동안 회사측에서 병문안 한번 오지 않았고, 의료사고에도 불구하고 병원측으로부터 미안하다는 말 듣지 못했어도 병원비라도 회사 측에서 지급해 주는 것이 고맙다"고 생각해야 할 처지다.

마르한씨는 매일 어머니와 통화한다. 하지만 "건강히 잘 있다"고 밝은 목소리만 전할 뿐, 사고 소식은 전하지 못했다. 벌써 6개월째 돈을 보내지 못하고 있지만 어머니는 마르한씨에게 한번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단다. 그런 가족을 위해서라도 마르한씨는 빨리 일하러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뒤늦게 이같은 소식을 들은 외국인노동자센터 회원들은 다방면에서 마르한을 도와줄 방법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외국인 노동자들은 3D업종 일자리를 메우는 등 우리 경제에 필요한 우리의 이웃"이라며 "제도개선을 통해 그들이 양지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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