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털털이로 갈 수 없잖아요…”
“빈털털이로 갈 수 없잖아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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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만원 때문에 불법 체류자가 된 크라파씨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공단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불법 체류자인 이들 중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고향으로 떠난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단속을 피해 각자 안전한 곳에 숨어 있다.
수차례 접촉 끝에 경우 만날 수 있었던 크라파씨(31·스리랑카)도 같은 처지다. 그는 집중단속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6명의 친구들과 함께 숨죽여 지내고 있었다.

크라파씨가 불법 체류자가 된 것은 '340만원' 때문이다. 그가 인터뷰에 응한 것도 '340만원'에 맺힌 한 때문이었다.
3년전 부산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던 시절, 그의 월급 50만원 중 15만원은 인력 관리 회사가 가져갔다. "연수가 끝나면 준댔어요. 이곳에서 돈 다 써버리고 스리랑카 돌아갈 때 돈 없으면 안되니까 그 때 한꺼번에 주겠다고 약속했었어요." 그렇게 인력 관리 회사가 맡아 관리해 온 금액이 340만원.

그러나 연수 기간이 끝나고 인력 관리 회사를 찾아갔던 크라파씨는 천청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사람이 바뀌어 있었어요. 제 돈을 갖고 갔던 사람은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어요. 제 돈은 이제 받을 수가 없다고 했어요."
크라파씨는 믿을 수가 없었다. 340만원이면 스리랑카에서 큰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으며, 3-4년 동안 아무일 하지 않고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돈이었기 때문이다.

산업 연수생 시절, 매달 15만원씩 압류…"연수 끝나면 준다 했는데"
"340만원이면 집도 사고 3-4년 가족들 먹고 살 수 있는 큰 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크라파씨는 불법 체류자가 되었다. 이후 그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광주에서 1백만원짜리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이다. 매달 스리랑카에 70만원씩 보내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쓰고 있다는 크라파씨는 3년째 불법 체류자 신세로 광주에 머물고 있다. 그는 이미 많은 돈을 벌었지만 '340만원'에 대한 애착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한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 없어요. 우리 스리랑카가 너무 어려우니까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만 벌어서 갈 꺼예요. 공짜로 돈 안 받아요.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요." 크라파씨의 이야기는 호소에 가까웠다.
그는 내년 2월쯤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어닥친 '강제출국'이 그의 목을 죄어왔다. "다른 친구들도 돈 조금만 벌어서 금방 갈꺼예요. 사장님도 언제든지 다시 와서 일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갈 수가 없어서 너무 답답해요."

크라파씨는 산업연수생 제도는 오히려 자신과 같은 불법 체류자를 늘리는 제도라고 했다. 크라파씨와 함께 머물고 있는 사람 중에는 산업연수생으로 왔으나 중간에 산업장에서 도망쳐 불법 체류자가 된 경우가 있었다. "산업연수생으로 갔는데 먼저 와 있던 연수생에 비해 월급을 적게 줬어요. 그래서 똑같이 월급 달라고 요구했더니 사장이 불만 있으면 나가라고 쫓아내서 나왔어요."

산업 연수만으론 '돈 못 벌어요'…불법 체류자 양산하는 한국 제도 비판

산업연수생이란 이유 때문에 마냥 피해만 보고 있을 수 없다. 크라파는 "우리는 이곳에 돈 벌러 왔어요. 가족들이 우리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는 돈을 벌어서 가야해요. 그냥 갈 수 없어요"라고 말하며 한국 정부의 부당한 제도가 불법 체류자 양산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번 바뀐 마음 두 번 바뀌지 말라는 법은 없다. 크라파는 정부가 조금만 관대해지길 바라고 있다. 애초 강력단속 의지를 밝혔던 정부는 인력난을 호소하는 기업주들의 원성이 높아지면서 입장을 바꾸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불법체류자 단속은 유예하겠다" "공장에 (단속하러)들어가지는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 따라서 외국 노동자들의 간곡한 부탁도 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 작은 희망의 실마리를 잡고 있다.

차라리 서울 노동자들처럼 "우리 살려달라고" 밖에서 목소리라도 크게 외쳐보고 싶다는 크라파씨. 그는 몇 개월만 더 한국에 머물 수 있게 해 준다면 "스리랑카에 돌아가 모텔사업을 하면서 한국 관광객들에게 좋은 서비스로 은혜를 갚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크라파씨가 꿈꾸는 '드림 코리아'의 행복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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