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로 이대흠 시인 애지문학상
'동그라미'로 이대흠 시인 애지문학상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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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면 일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강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o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꼬지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 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순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2003년, '애지' 여름호-



한국인들을 '사상가와 예술가의 민족'으로 육성하기 위해 창간된 계간시 전문지 '애지'. 본지 '문화난장'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대흠씨(시인)의 '동그라미'가 제1회 애지문학상에 선정됐다.
애지 심사위원들은 지금까지 이씨의 시세계가 '한국적인 정한'에 근거를 두고 삶의 차원에서 노래해 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동그라미'를 통해 그는 한국적인 정한을 삶의 기쁨으로 변모시켜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애지 측은 "이대흠의 시는 구체적인 현실의 차원을 뛰어 넘어서서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언어로 이 세상의 삶과 존재의 비밀을 캐어내려는 형이상학적 혹은 우주론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어 나가고 있다"고 평했다. 또, "갑자기 한 시대 한 문화 전체가 빨려 들어갈 듯한 잠언적이고 경구적인 문체로 한국현대시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끌어낼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이씨는 94년 '창작과 비평' 봄호를 통해 등단했다. 등단했던 해 그는 10년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시집은 세 권쯤 내야겠다. 소설로도 등단을 해야겠다. 장편 두 편 써야겠다. 시집 한 권 분량 정도의 장시 한편을 써야겠다'는 것. 10년 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이씨는 또다시 10년 계획을 세우기 위해 '출발선'에 서 있다.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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